건널수 없는 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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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니소니 조회 43회 작성일26-08-11 13:48본문
《두번째는 킨상의 오만한 눈빛이 좋아서예요. 중국에서 왔으면 중국에 어울리는 눈빛으로 일본을 쳐다봐야 하는데 킨상은 뭘 믿구 오만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는가 말이예요. 그 오만한 눈빛에 눌려 나는 결국 작아졌고 내가 작아졌기에 킨상을 쳐다볼수 있게 된거예요. 이건 일본의 론리인것이 아니라 나의 론리예요.》
그 말에 아야는 웃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중국에서도 많이 들어왔던 그 《오만하다》는 말을 일본녀자 입을 통해 듣고있다는것이 나에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였다. 중국에서는 그 점을 많이 고치려고 했지만 그날 아야앞에서는 도리여 오만해서 다행이였다는 생각을 했다.
아야는 그날 스스로 몸을 가눌수 없을만큼 취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나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다가 머리를 밥상우에 박고 잠들어버리고말았다. 나는 잠든 그녀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다다미우에 눕혔다. 그다음 술에 취해 네각을 벌리고 누운 그녀를 걸탐스럽게 훑어보았다. 아야의 육체는 술에 취해있었지만 나의 남자는 술에 취한 그녀의 육체를 갈망하고있었다. 나는 그녀의 육체를 더듬고싶어하는 나의 손가락사이에 담배가치를 끼웠다. 그다음 그 담배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그녀옆에서 홀로 서성거렸다. 타들어가는 담배불과 함께 아야옆에서 자고싶다는 욕망도 불타는 순간이 숨막히게 흘렀다. 그러나 아야옆에서 자고싶다는 나의 욕망은 결국 술에 취한 녀자를 점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무참히 꺾이고말았다. 술에 취한 녀자와 하루밤을 보낸다는것이 너무나 비겁하게 느껴졌기때문이다.
전등을 끄고 내가 소리를 죽여가며 문어구에서 신을 찾고있을 때, 그때까지 잠을 자고있다고 생각했던 아야가 《잠간만요─!》하고 낮게 소리치며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다음 무작정 어둠속에 묻혀있는 나에게 안겼다. 아야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서 떨어져나가기까지 얼마만한 시간이 흘렀을가. 두손으로 나의 얼굴을 덮고 섰던 아야가 손을 떼며 《이젠 가보세요!》했다. 아야는 어둠속에서 울고있었다.
그날 밤 내가 그녀의 생일케익 초대에 붙인 불은 그후 그녀와 나를 더욱 활활 타오르게 했다. 아야는 강 하나를 사이둔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가 서로 똑같은 7층 아빠트에서 산다는 그 절묘한 일치점을 한번 눈으로 확인하고싶기라도 하듯 어느 수요일날 오전에 나의 핸드폰으로 전화까지 해왔다. 지금 자기가 베란다에 서서 우리 집 방향을 향해 손을 젓고있으니 나더러 어서 나와 확인해보라는것이였다. 그녀의 말대로 핸드폰을 귀에 댄채로 베란다로 뛰쳐나가보니 강뚝넘어에 높이 솟은 아빠트에서 나를 향해 손을 젓는 그녀의 모습이 희미하게 안겨왔다.
《제가 지금 손을 젓고있는 모습이 보여요? 》
그녀가 핸드폰에 대고 소리쳤다.
《보입니다. 눈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륜곽은 보여요.》
나도 그녀처럼 소리 높이 웨쳤다.
《눈은 보이지 않는데 사람은 보인다? 재미있는 말이네요.》
그녀가 깔깔 웃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 일이지요? 출근도 하지 않고.》
손을 젓는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오늘이 수요일이잖아요. 요일도 잊고 사세요?》
그녀가 어이없다는듯 말했다. 나는 그제야 오늘이 그녀가 휴식하는 수요일이라는것을 알았다. 그녀는 자기가 휴식하는 수요일이면 내가 집에 앉아 론문을 쓴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내가 재일조선족문학에 관한 론문을 쓴다는것까지는 몰랐다. 수요일에 그녀가 전화해오기는 그날이 처음이였다.
《킨상이 흔드는 손이 마치 중국의 오성붉은기 같네요.》
그녀가 다시 나를 향해 익살스럽게 소리쳤다. 그 말이 재미나서 나도 그녀를 본받아 《아야상이 흔드는 손은 일본의 일장기 같군요.》했다. 서로를 향해 흔드는 손을 보면서 《오성붉은기》와 《일장기》를 상상했다는것은 지나친 비약이요 과장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비약과 과장에도 우리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파아란 하늘우에서 둥둥 떠가는 쪼각구름이 우리가 쳐든 기발을 향해 웃고있는듯했다.
그런데 그날 무심히 웨친 《오성붉은기》라는 말과 《일장기》라는 말이 뜻하지 않게 우리사이에 엉뚱한 화제를 몰고올줄이야. 그것은 아야와 나의 관계속에 정치가 개입됨을 시사하는 하나의 신호탄 같은것이였다. 허나 그때까지 우리는 전혀 그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일장기와도 같은 손》과 《오성붉은기와도 같은 손》을 서로 뜨겁게 흔들어보이기에만 열중했다. 그날 우리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타가와강은 왜 그렇듯 맑고 아름답던지. 그리고 그녀와 나 사이를 하나로 이어준 오타가와다리는 왜 또 그렇게도 단단해보이던지. 그 아름다운 강과 단단한 다리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 손을 저으며 자기쪽으로 건너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강이 너무 넓어 건너가지 못하겠다고 했고 그녀는 다리가 무너질가봐 건너오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둘은 또 웃었다.
《킨상이 건너오면 내가 강뚝까지 마중갈게요.》
그녀는 내가 론문때문에 건너갈수 없음을 잘 알고있었다. 그녀의 말에 나도 《아야상이 건너오면 다리목까지 마중갈거예요.》했다. 남자 혼자만 살고있는 집으로 그녀도 올수 없음을 나도 잘 알고있었다. 나의 말에 아야는 언제인가 내가 배워준 중국말로 《워허은니!》했다.
결국 그날 우리는 누구도 누구에게로 건너가지 못한채 서로 작은 손만을 흔들어보이다가 자기집으로 제가끔 몸을 숨기고말았다.
그 일이 있고나서 처음으로 회사 식당에서 그녀와 마주 앉아 식사하던 날, 그녀는 나에게 왜 중국의 국기는 오성붉은기냐는 질문을 문득 해왔다. 내가 별 다섯개는 중국의 여러 민족의 단결을 상징하고 붉은색은 나라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피를 상징한다고 설명하자 그녀는 《어마나!》하며 놀란 소리를 질렀다. 왜 놀라느냐고 내가 묻자 그녀는 붉은색이 피를 상징한다면 중국의 국기는 너무나 화약냄새를 많이 풍기는 기발이라고 이마까지 찡그리며 말했다.
《지금은 평화시대인데 국기도 평화시대에 걸맞게 만들어야 될것 아니예요. 그런데 피라니 너무나 끔찍하네요.》
나는 원래 그녀의 그 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가볍게 풀이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한 그녀 자체가 아무런 악의도 없이 말했을것이기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그녀의 그런 말을 반박하지 않으면 안되게 나를 앞으로 조금씩 떠밀고있었다.
《그럼 일본의 일장기는 어때요? 일장기 한복판에도 빨간 색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나는 가급적 그녀앞에서 태연해지려고 애썼다. 나의 말에 그녀가 재미있다는듯 웃었다. 웃는 그녀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빨간 색이지만 그건 피가 아니라 말그대로 태양을 상징하는거잖아요. 태양이란 뭐예요? 인간이나 자연만물에 따스함을 주는 신령 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그러니 일본의 일장기는 평화를 상징하는 기발이라고 할수 있지요.》
그녀는 그때까지도 나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천진한 아이처럼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털어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일장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까지 말하는 그녀를 두고 나는 점점 그녀를 용서할수 없는 한계점에 다가가고있었다.
(그냥 너를 믿고 해보는 소리야.)
나는 그때 분명히 나의 몸속의 또 다른 한 내가 나를 향해 이렇게 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 권고가 마음에 닿기도전에 나의 입에서는 어느덧 그녀의 말을 반박하는 소리가 거침없이 흘러나가고있었다.
《일장기가 평화의 상징이라면 일본은 왜 그 기발을 휘두르며 과거 그렇듯 많은 아세아 국가들을 침략했을가요? 일본인은 일장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인이나 한국인은 반대로 침략의 상징으로 생각하는거예요.》
느닷없이 들이대는 나의 반론에 그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머리를 숙이는 그녀의 입에서 《혹시 그럴지도 모르지요.》하는 말이 신음소리처럼 가늘게 새여나왔다. 나는 그제야 아차 했다. 그냥 쉽게 넘길수도 있는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풀이했다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나는 내가 한 말에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미 엎지른 물인줄 알면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 어울리지 않네요.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 화제를 피합시다. 사실 난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예요.》
내가 변명처럼 어색하게 말했다. 그녀는 머리를 숙인채 담담히 웃기만 했다. 침묵이 흘렀다. 불안한 침묵이었다.
《금방 저가 정말 실례했습니다!》
갑자기 그녀가 발딱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사죄했다. 머리까지 깊이 숙여가며 《시츠레이시마시다》(실례했습니다)를 웨치는 그녀의 눈에서 이슬이 반짝였다. 그녀의 사죄, 그녀의 눈물에 나는 한대 얻어맞은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냥 해본 소린데…) 나는 속으로 이렇게 독백하고있었다. 그녀의 사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것 같았다. 일본사람들은 《실례》라는 말을 우리 말처럼 사죄의 의미로도 쓰지만 또 고별의 의미로도 쓴다. 나는 그녀의 사죄는 후자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혹시 그녀가 정말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안되는 말이였다. 그녀를 놓치고싶지 않았다. 나는 금방 내가 한 말이 그냥 롱담이였다는것, 나라 국기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말로 그녀의 량해를 구하고싶었다. 그러나 웬 영문인지 나의 입은 얼어붙은 강처럼 꾹 닫힌채 좀체로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튿날 점심에도 여전히 나와 식탁을 마주하고 앉아 변함없이 애교를 부렸다. 마치 전날의 불쾌했던 일을 까맣게 잊기라도 한듯 얼굴에 밝은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후-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나를 리해해주는 그녀가 고마워서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그날 그녀는 우리의 사생활이 아닌, 중국에 대한 화제를 꺼냈다. 중국의 56개 소수민족에 대해서도 물었고 만리장성에 대해서도 물었고 근간의 상해의 비약적인 발전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웃기까지 하면서 한참 신나게 이야기하고있을 때, 식사를 마치고 옆을 지나던 우야마씨가 문득 걸음을 멈추며 《킨상은 지난 3월에 중국에서 발생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어왔다. 금년에 나보다 다섯살아래인 우야마씨는 나와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청년이였고 언제나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글쎄요.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서 나도 잘 모르겠는데요.》
일본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어느쪽이 옳고 어느쪽이 그르다는 판단을 피하고싶어서 나는 이런 애매한 표현을 했다. 나의 말에 실망을 느꼈는지 우야마씨가 머리를 저으며 《알겠어요. 나로서는 너무 리해되지 않아서 물은거예요.》하며 문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우야마씨가 던진 말이 아야와 나 사이에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르게 했다. 어딘가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저는 중국에서 일으킨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대단히 유치하다고 생각하는데 킨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야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전적인 어조로 질문했다. 직설적인 표현을 가급적으로 삼가하는 일본인으로서는 너무나도 당돌한 의사표달이였다. 나는 아야가 왜 갑자기 그렇듯 흥분하는지 알수 없었다. 어제 나에게서 당한 일이 분해서 보복이라도 할셈인가.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야씨, 나 어제 약속했지 않아요. 이제부터 정치에 대한 화제는 피한다구. 게다가 나는 정치맹(政治盲)이예요.》
내가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픽 실소했다.
《중국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일으킨다는 말은 그만큼 일본상품이 좋다는 반증으로 되는것이 아닐가요? 그런데 왜 좋은 상품을 굳이 사지 않으려고들 하지요? 상품에도 무슨 죄가 있나요? 일본을 작은 나라라고 하면서 중국은 왜 대국답게 크게 놀지 못하지요?》
그녀가 다시 나를 허비듯 입을 열었다. 흥분하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있었다. 그런데 웃으면서 한 그녀의 말 마디마디가 나에겐 칼처럼 느껴졌다. 일본인들이 말한것처럼 내가 정말 중국에서 《반일교육》과 《애국교육》을 너무나 많이 받아온때문이였을가. 조선족인 나에게 있어서 중국은 또 무엇인가.
《아야씨, 아야씨는 중국인들이 일으킨 그번 운동이 단순한 일본상품 배척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중국인들이 일본상품을 여전히 사주면서 그런 운동을 일으켰다면 일본으로서는 그 운동에 담긴 메시지 같은것에 조금은 주목해야 되는것 아닌가요?》
내가 끝내 한마디 뱉았다. 그녀처럼 나도 웃는것을 잊지 않았다. 나의 말에 그녀가 상기된 얼굴로 즉각 반문했다.
《어떤 메시지인데요?》
《물론 일본인들더러 과거의 침략력사를 철저히 반성하라는 메시지겠지요. 요즘처럼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A급 전범에게 참배한다든지 력사교과서를 뜯어고친다든지 평화헌법 제9조를 개헌하려 한다든지 특별히 9.18만주사변일을 택해서 중국 아가씨들을 매수하여 집단적인 섹스를 한다든지 하는 행위들을 그만두고…》
아야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나는 이미 내가 아니였다. 나속의 다른 한 나, 아니, 나밖의 다른 한 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말들을 그녀를 좋아하는 내가 말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마침 오후 출근을 알리는 종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녀는 그날 이전과는 달리 나에게 아쉽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작업복을 꽁꽁 여미면서 문을 나서는 그녀의 걸음에서 찬바람이 일고있었다. 나는 그 찬바람을 가을바람이라고 착각하고싶었다. 그녀의 뒤를 말없이 따르면서 나는 이제 다시는 정치적인 화제로 그녀를 괴롭히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또 했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인쪽으로 걸음을 내디딘 우리는 그 어떤 타력에 의해 앞으로 떠밀려갈뿐 그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하고있었다.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싶었기때문은 결코 아니였다. 그녀와 나는 그런 이야기가 결국 우리사이에 마이너스를 가져다줄뿐이라는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정치는 더욱 기승스럽게 우리사이에 끼여들고있었고 우리는 또 우리대로 마귀에게 홀린 사람처럼 그 이야기에 말려들기만 했다. 물론 정치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번마다 충돌했던것만은 아니였다. 례하면 그녀도 나처럼 고이즈미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있었고 나도 그녀처럼 중국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일으킨 과격행위에 반감을 갖고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치점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채 그저 우리곁을 스쳐지나기만할뿐이였다. 그녀와 시야비야하면서 나는 우리는 어쩔수 없는 중국사람, 일본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물론 그녀도 그런 생각으로 힘들어했다.
나의 입에서 떠올려지는 중국은 어느덧 《우리 나라》로 다가왔고 일본은 《너의 나라》로 밀려났다. 물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중국과 일본도 《너의 나라》와 《우리 나라》로 각각 분렬됐다. 그런 식으로 말하다보면 중국은 정말로 나에게만 속하는 나라, 일본은 그녀에게만 속하는 나라처럼 착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시비는 자연히 중국은 다 옳고 일본은 다 틀렸다와 일본은 다 옳고 중국은 다 틀렸다의 흑백론리로 기울어질수밖에 없었다. 언제는 아야라는 녀자와 킨이라는 남자의 밀접한 만남이기만 했던 우리사이가 어느덧 일본인과 중국인의 만남으로 소원해져갔다. 그 소원함에 불안해하면서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기만 했다.
나는 때로는 그녀에게 내가 조선족이라는것을 밝히고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왜 밝히고싶었는지 나도 알수 없었다. 내가 조선족이기에 중국을 너무 편애해서 말하지는 않는다는 변명이라도 하고싶었던것일가. 그러나 결국 나는 그녀에게 내가 조선족이라는것을 밝히지 않았다. 중국인이기도 하면서 조선족이기도 한 나의 이중적인 얼굴을 그녀에게 보이고싶지 않았기때문이다. 일본에서 중국인이나 조선인(한국인)이나 다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나는 비록 이중인이지만 이중으로 차별받고싶지 않았다. 만약 내가 중국조선족이라는것을 알면 아야는 일본에서의 재일조선인 경우를 생각하면서 즉각 나를 중국 변두리인으로 취급해버릴수도 있을것이다.
우리는 입으로는 언제나 정치인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다. 그러나 행동으로는 항상 정치의 울안에 갇혀 자기 나라를 변호하기에만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자기 나라를 변호하고나서 뒤돌아보면 상처를 입은 사람은 언제나 우리 둘뿐이였다. 그녀의 상처는 언제나 내가 준것으로 돼있었고 나의 상처는 그녀가 준것으로 돼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픔뿐만이 아닌 비애까지 느껴야 했다. 어느덧 우리는 상대에게 아픔과 슬픔을 주는 악역으로 슬슬 둔갑해갔다. 점심휴식시간에 한 식탁에서 밥을 먹던 우리는 따로 떨어져서 밥을 먹기 시작했고 1시간의 만남에 아쉬움만 느꼈던 우리는 잠간의 만남도 피하기에 급급했다. 아야의 눈에서 이따금 칼날같은 독기가 번뜩이기 시작한것도 바로 그 무렵이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아야는 대학교때 국제정치를 전공했었다.
서로가 그 무슨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라도 되는것처럼 중국과 일본간에 일어나는 모든 마찰을 걷어안고 티격태격 론쟁을 벌리던 그녀와 나는 지난 마가을에 끝내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치고야말았다. 그날 그녀는 나의 자그마한 실수로 잠간 기계가 멈춘 일을 트집잡아 온 회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야단쳤다.
《중국사람들은 다 이따위 식으로 일해요? 킨상은 지금 뭔가 크게 착각하고있는 모양인데 이제부터 정신을 똑바로 차리세요. 킨상이 지금 일하는 곳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 일본이란 말이예요. 킨상이 상품을 잘못 취급하면 중국의 체면이 깎이는것이 아니라 우리 일본의 체면이 깎여요. 알았어요?!》
그녀의 말은 나에 대한 본격적인 전쟁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중국까지 곁들여가면서 마구 폄하는 그녀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오물을 배설하듯 되는대로 욕을 퍼붓고나서 막 자리를 뜨려하는 그녀를 나는 조용히 불러세웠다.
《아야씨, 나 한사람의 실수를 트집잡아 중국까지 싸잡아 욕해대는 자신이 너무 비굴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아야씨가 이렇듯 요사하고 비루한 인간인줄 몰랐습니다. 좋아요. 내가 이 회사에서 일본의 체면을 깎는 모양인데 이제 이틀만 더 참아줘요. 아야씨를 위해 다음주부터 내가 이 회사에서 영 사라져줄테니까. 이제 됐어요?!》
내가 꽥 소리질렀다. 나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그녀는 한동안 어정쩡한 눈길로 바라볼뿐 아무런 말도 못했다. 사실 다음주부터 회사에서 사라져준다는 나의 말은 그녀를 놀래우기 위한 엄포는 아니였다. 그때 나는 회사는 물론, 일본을 떠나려고 손에 이미 귀국하는 비행기 티켓까지 쥐고있었다.
자리에 뚝 굳어진채 아야가 얼마나 긴 시간 서있었을가. 멈춘 기계가 다시 돌아가고 사원들이 들썩거리면서 저마다 일하는데도 그녀는 그 모든것들이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것처럼 그때까지 나만 노려보고있었다. 독기로 섬뜩이던 그녀의 눈빛은 이미 허물어지고 긴 눈초리가 처마처럼 곱게 드리운 눈에서 어느 한순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있었다. 이발로 지긋이 깨문 입술, 원망으로 가득 찬 눈, 나는 그녀앞에서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서있는 그 순간순간이 견딜수 없게 힘들고 괴로웠다. 아! 우리는 결국 이렇게 끝나는것이구나! 허물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혼자 아프게 독백했다.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듯 《정말 실망했어!》하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미친듯이 달려갔다.
내가 일본에서 떠나오던 그 전날은 아야가 휴식하는 수요일이였다. 정작 래일 6년 반이라는 세월을 살았던 일본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중국이 옳니 일본이 그르니 하며 정신없이 아야와 자존심 대결을 벌려왔던 그 모든 일들이 한낱 부질없는 짓처럼 생각되여 후회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한 일로 우리의 진정을 생매장한 자신이 용서할수 없을만큼 미웠다.
나는 그날 일부러 그녀가 살고있는 아빠트가 환히 바라보이는 강가를 오래도록 홀로 서성거렸다. 혹시 만에 하나 그녀가 베란다에 서서 이쪽 강기슭을 바라라도 본다면 그동안 일본인으로 그녀를 밀어내치기만 했던 지난 과거의 비정을 후회하고 오직 인간 그녀만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나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싶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베란다에 잠간이라도 나타나주기를 바랬던 나의 상상을 깨고 그녀는 어느 한순간 태양처럼 강기슭에 나타났다. 나와 똑같은 일직선에서 이쪽을 바라보고있는 그녀의 얼굴은 굳어진듯 오래도록 움직일줄 몰랐다
그 말에 아야는 웃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중국에서도 많이 들어왔던 그 《오만하다》는 말을 일본녀자 입을 통해 듣고있다는것이 나에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였다. 중국에서는 그 점을 많이 고치려고 했지만 그날 아야앞에서는 도리여 오만해서 다행이였다는 생각을 했다.
아야는 그날 스스로 몸을 가눌수 없을만큼 취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나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다가 머리를 밥상우에 박고 잠들어버리고말았다. 나는 잠든 그녀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다다미우에 눕혔다. 그다음 술에 취해 네각을 벌리고 누운 그녀를 걸탐스럽게 훑어보았다. 아야의 육체는 술에 취해있었지만 나의 남자는 술에 취한 그녀의 육체를 갈망하고있었다. 나는 그녀의 육체를 더듬고싶어하는 나의 손가락사이에 담배가치를 끼웠다. 그다음 그 담배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그녀옆에서 홀로 서성거렸다. 타들어가는 담배불과 함께 아야옆에서 자고싶다는 욕망도 불타는 순간이 숨막히게 흘렀다. 그러나 아야옆에서 자고싶다는 나의 욕망은 결국 술에 취한 녀자를 점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무참히 꺾이고말았다. 술에 취한 녀자와 하루밤을 보낸다는것이 너무나 비겁하게 느껴졌기때문이다.
전등을 끄고 내가 소리를 죽여가며 문어구에서 신을 찾고있을 때, 그때까지 잠을 자고있다고 생각했던 아야가 《잠간만요─!》하고 낮게 소리치며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다음 무작정 어둠속에 묻혀있는 나에게 안겼다. 아야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서 떨어져나가기까지 얼마만한 시간이 흘렀을가. 두손으로 나의 얼굴을 덮고 섰던 아야가 손을 떼며 《이젠 가보세요!》했다. 아야는 어둠속에서 울고있었다.
그날 밤 내가 그녀의 생일케익 초대에 붙인 불은 그후 그녀와 나를 더욱 활활 타오르게 했다. 아야는 강 하나를 사이둔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가 서로 똑같은 7층 아빠트에서 산다는 그 절묘한 일치점을 한번 눈으로 확인하고싶기라도 하듯 어느 수요일날 오전에 나의 핸드폰으로 전화까지 해왔다. 지금 자기가 베란다에 서서 우리 집 방향을 향해 손을 젓고있으니 나더러 어서 나와 확인해보라는것이였다. 그녀의 말대로 핸드폰을 귀에 댄채로 베란다로 뛰쳐나가보니 강뚝넘어에 높이 솟은 아빠트에서 나를 향해 손을 젓는 그녀의 모습이 희미하게 안겨왔다.
《제가 지금 손을 젓고있는 모습이 보여요? 》
그녀가 핸드폰에 대고 소리쳤다.
《보입니다. 눈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륜곽은 보여요.》
나도 그녀처럼 소리 높이 웨쳤다.
《눈은 보이지 않는데 사람은 보인다? 재미있는 말이네요.》
그녀가 깔깔 웃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 일이지요? 출근도 하지 않고.》
손을 젓는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오늘이 수요일이잖아요. 요일도 잊고 사세요?》
그녀가 어이없다는듯 말했다. 나는 그제야 오늘이 그녀가 휴식하는 수요일이라는것을 알았다. 그녀는 자기가 휴식하는 수요일이면 내가 집에 앉아 론문을 쓴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내가 재일조선족문학에 관한 론문을 쓴다는것까지는 몰랐다. 수요일에 그녀가 전화해오기는 그날이 처음이였다.
《킨상이 흔드는 손이 마치 중국의 오성붉은기 같네요.》
그녀가 다시 나를 향해 익살스럽게 소리쳤다. 그 말이 재미나서 나도 그녀를 본받아 《아야상이 흔드는 손은 일본의 일장기 같군요.》했다. 서로를 향해 흔드는 손을 보면서 《오성붉은기》와 《일장기》를 상상했다는것은 지나친 비약이요 과장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비약과 과장에도 우리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파아란 하늘우에서 둥둥 떠가는 쪼각구름이 우리가 쳐든 기발을 향해 웃고있는듯했다.
그런데 그날 무심히 웨친 《오성붉은기》라는 말과 《일장기》라는 말이 뜻하지 않게 우리사이에 엉뚱한 화제를 몰고올줄이야. 그것은 아야와 나의 관계속에 정치가 개입됨을 시사하는 하나의 신호탄 같은것이였다. 허나 그때까지 우리는 전혀 그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일장기와도 같은 손》과 《오성붉은기와도 같은 손》을 서로 뜨겁게 흔들어보이기에만 열중했다. 그날 우리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타가와강은 왜 그렇듯 맑고 아름답던지. 그리고 그녀와 나 사이를 하나로 이어준 오타가와다리는 왜 또 그렇게도 단단해보이던지. 그 아름다운 강과 단단한 다리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 손을 저으며 자기쪽으로 건너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강이 너무 넓어 건너가지 못하겠다고 했고 그녀는 다리가 무너질가봐 건너오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둘은 또 웃었다.
《킨상이 건너오면 내가 강뚝까지 마중갈게요.》
그녀는 내가 론문때문에 건너갈수 없음을 잘 알고있었다. 그녀의 말에 나도 《아야상이 건너오면 다리목까지 마중갈거예요.》했다. 남자 혼자만 살고있는 집으로 그녀도 올수 없음을 나도 잘 알고있었다. 나의 말에 아야는 언제인가 내가 배워준 중국말로 《워허은니!》했다.
결국 그날 우리는 누구도 누구에게로 건너가지 못한채 서로 작은 손만을 흔들어보이다가 자기집으로 제가끔 몸을 숨기고말았다.
그 일이 있고나서 처음으로 회사 식당에서 그녀와 마주 앉아 식사하던 날, 그녀는 나에게 왜 중국의 국기는 오성붉은기냐는 질문을 문득 해왔다. 내가 별 다섯개는 중국의 여러 민족의 단결을 상징하고 붉은색은 나라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피를 상징한다고 설명하자 그녀는 《어마나!》하며 놀란 소리를 질렀다. 왜 놀라느냐고 내가 묻자 그녀는 붉은색이 피를 상징한다면 중국의 국기는 너무나 화약냄새를 많이 풍기는 기발이라고 이마까지 찡그리며 말했다.
《지금은 평화시대인데 국기도 평화시대에 걸맞게 만들어야 될것 아니예요. 그런데 피라니 너무나 끔찍하네요.》
나는 원래 그녀의 그 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가볍게 풀이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한 그녀 자체가 아무런 악의도 없이 말했을것이기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그녀의 그런 말을 반박하지 않으면 안되게 나를 앞으로 조금씩 떠밀고있었다.
《그럼 일본의 일장기는 어때요? 일장기 한복판에도 빨간 색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나는 가급적 그녀앞에서 태연해지려고 애썼다. 나의 말에 그녀가 재미있다는듯 웃었다. 웃는 그녀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빨간 색이지만 그건 피가 아니라 말그대로 태양을 상징하는거잖아요. 태양이란 뭐예요? 인간이나 자연만물에 따스함을 주는 신령 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그러니 일본의 일장기는 평화를 상징하는 기발이라고 할수 있지요.》
그녀는 그때까지도 나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천진한 아이처럼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털어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일장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까지 말하는 그녀를 두고 나는 점점 그녀를 용서할수 없는 한계점에 다가가고있었다.
(그냥 너를 믿고 해보는 소리야.)
나는 그때 분명히 나의 몸속의 또 다른 한 내가 나를 향해 이렇게 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 권고가 마음에 닿기도전에 나의 입에서는 어느덧 그녀의 말을 반박하는 소리가 거침없이 흘러나가고있었다.
《일장기가 평화의 상징이라면 일본은 왜 그 기발을 휘두르며 과거 그렇듯 많은 아세아 국가들을 침략했을가요? 일본인은 일장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인이나 한국인은 반대로 침략의 상징으로 생각하는거예요.》
느닷없이 들이대는 나의 반론에 그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머리를 숙이는 그녀의 입에서 《혹시 그럴지도 모르지요.》하는 말이 신음소리처럼 가늘게 새여나왔다. 나는 그제야 아차 했다. 그냥 쉽게 넘길수도 있는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풀이했다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나는 내가 한 말에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미 엎지른 물인줄 알면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 어울리지 않네요.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 화제를 피합시다. 사실 난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예요.》
내가 변명처럼 어색하게 말했다. 그녀는 머리를 숙인채 담담히 웃기만 했다. 침묵이 흘렀다. 불안한 침묵이었다.
《금방 저가 정말 실례했습니다!》
갑자기 그녀가 발딱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사죄했다. 머리까지 깊이 숙여가며 《시츠레이시마시다》(실례했습니다)를 웨치는 그녀의 눈에서 이슬이 반짝였다. 그녀의 사죄, 그녀의 눈물에 나는 한대 얻어맞은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냥 해본 소린데…) 나는 속으로 이렇게 독백하고있었다. 그녀의 사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것 같았다. 일본사람들은 《실례》라는 말을 우리 말처럼 사죄의 의미로도 쓰지만 또 고별의 의미로도 쓴다. 나는 그녀의 사죄는 후자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혹시 그녀가 정말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안되는 말이였다. 그녀를 놓치고싶지 않았다. 나는 금방 내가 한 말이 그냥 롱담이였다는것, 나라 국기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말로 그녀의 량해를 구하고싶었다. 그러나 웬 영문인지 나의 입은 얼어붙은 강처럼 꾹 닫힌채 좀체로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튿날 점심에도 여전히 나와 식탁을 마주하고 앉아 변함없이 애교를 부렸다. 마치 전날의 불쾌했던 일을 까맣게 잊기라도 한듯 얼굴에 밝은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후-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나를 리해해주는 그녀가 고마워서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그날 그녀는 우리의 사생활이 아닌, 중국에 대한 화제를 꺼냈다. 중국의 56개 소수민족에 대해서도 물었고 만리장성에 대해서도 물었고 근간의 상해의 비약적인 발전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웃기까지 하면서 한참 신나게 이야기하고있을 때, 식사를 마치고 옆을 지나던 우야마씨가 문득 걸음을 멈추며 《킨상은 지난 3월에 중국에서 발생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어왔다. 금년에 나보다 다섯살아래인 우야마씨는 나와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청년이였고 언제나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글쎄요.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서 나도 잘 모르겠는데요.》
일본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어느쪽이 옳고 어느쪽이 그르다는 판단을 피하고싶어서 나는 이런 애매한 표현을 했다. 나의 말에 실망을 느꼈는지 우야마씨가 머리를 저으며 《알겠어요. 나로서는 너무 리해되지 않아서 물은거예요.》하며 문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우야마씨가 던진 말이 아야와 나 사이에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르게 했다. 어딘가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저는 중국에서 일으킨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대단히 유치하다고 생각하는데 킨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야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전적인 어조로 질문했다. 직설적인 표현을 가급적으로 삼가하는 일본인으로서는 너무나도 당돌한 의사표달이였다. 나는 아야가 왜 갑자기 그렇듯 흥분하는지 알수 없었다. 어제 나에게서 당한 일이 분해서 보복이라도 할셈인가.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야씨, 나 어제 약속했지 않아요. 이제부터 정치에 대한 화제는 피한다구. 게다가 나는 정치맹(政治盲)이예요.》
내가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픽 실소했다.
《중국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일으킨다는 말은 그만큼 일본상품이 좋다는 반증으로 되는것이 아닐가요? 그런데 왜 좋은 상품을 굳이 사지 않으려고들 하지요? 상품에도 무슨 죄가 있나요? 일본을 작은 나라라고 하면서 중국은 왜 대국답게 크게 놀지 못하지요?》
그녀가 다시 나를 허비듯 입을 열었다. 흥분하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있었다. 그런데 웃으면서 한 그녀의 말 마디마디가 나에겐 칼처럼 느껴졌다. 일본인들이 말한것처럼 내가 정말 중국에서 《반일교육》과 《애국교육》을 너무나 많이 받아온때문이였을가. 조선족인 나에게 있어서 중국은 또 무엇인가.
《아야씨, 아야씨는 중국인들이 일으킨 그번 운동이 단순한 일본상품 배척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중국인들이 일본상품을 여전히 사주면서 그런 운동을 일으켰다면 일본으로서는 그 운동에 담긴 메시지 같은것에 조금은 주목해야 되는것 아닌가요?》
내가 끝내 한마디 뱉았다. 그녀처럼 나도 웃는것을 잊지 않았다. 나의 말에 그녀가 상기된 얼굴로 즉각 반문했다.
《어떤 메시지인데요?》
《물론 일본인들더러 과거의 침략력사를 철저히 반성하라는 메시지겠지요. 요즘처럼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A급 전범에게 참배한다든지 력사교과서를 뜯어고친다든지 평화헌법 제9조를 개헌하려 한다든지 특별히 9.18만주사변일을 택해서 중국 아가씨들을 매수하여 집단적인 섹스를 한다든지 하는 행위들을 그만두고…》
아야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나는 이미 내가 아니였다. 나속의 다른 한 나, 아니, 나밖의 다른 한 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말들을 그녀를 좋아하는 내가 말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마침 오후 출근을 알리는 종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녀는 그날 이전과는 달리 나에게 아쉽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작업복을 꽁꽁 여미면서 문을 나서는 그녀의 걸음에서 찬바람이 일고있었다. 나는 그 찬바람을 가을바람이라고 착각하고싶었다. 그녀의 뒤를 말없이 따르면서 나는 이제 다시는 정치적인 화제로 그녀를 괴롭히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또 했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인쪽으로 걸음을 내디딘 우리는 그 어떤 타력에 의해 앞으로 떠밀려갈뿐 그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하고있었다.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싶었기때문은 결코 아니였다. 그녀와 나는 그런 이야기가 결국 우리사이에 마이너스를 가져다줄뿐이라는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정치는 더욱 기승스럽게 우리사이에 끼여들고있었고 우리는 또 우리대로 마귀에게 홀린 사람처럼 그 이야기에 말려들기만 했다. 물론 정치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번마다 충돌했던것만은 아니였다. 례하면 그녀도 나처럼 고이즈미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있었고 나도 그녀처럼 중국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일으킨 과격행위에 반감을 갖고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치점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채 그저 우리곁을 스쳐지나기만할뿐이였다. 그녀와 시야비야하면서 나는 우리는 어쩔수 없는 중국사람, 일본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물론 그녀도 그런 생각으로 힘들어했다.
나의 입에서 떠올려지는 중국은 어느덧 《우리 나라》로 다가왔고 일본은 《너의 나라》로 밀려났다. 물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중국과 일본도 《너의 나라》와 《우리 나라》로 각각 분렬됐다. 그런 식으로 말하다보면 중국은 정말로 나에게만 속하는 나라, 일본은 그녀에게만 속하는 나라처럼 착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시비는 자연히 중국은 다 옳고 일본은 다 틀렸다와 일본은 다 옳고 중국은 다 틀렸다의 흑백론리로 기울어질수밖에 없었다. 언제는 아야라는 녀자와 킨이라는 남자의 밀접한 만남이기만 했던 우리사이가 어느덧 일본인과 중국인의 만남으로 소원해져갔다. 그 소원함에 불안해하면서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기만 했다.
나는 때로는 그녀에게 내가 조선족이라는것을 밝히고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왜 밝히고싶었는지 나도 알수 없었다. 내가 조선족이기에 중국을 너무 편애해서 말하지는 않는다는 변명이라도 하고싶었던것일가. 그러나 결국 나는 그녀에게 내가 조선족이라는것을 밝히지 않았다. 중국인이기도 하면서 조선족이기도 한 나의 이중적인 얼굴을 그녀에게 보이고싶지 않았기때문이다. 일본에서 중국인이나 조선인(한국인)이나 다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나는 비록 이중인이지만 이중으로 차별받고싶지 않았다. 만약 내가 중국조선족이라는것을 알면 아야는 일본에서의 재일조선인 경우를 생각하면서 즉각 나를 중국 변두리인으로 취급해버릴수도 있을것이다.
우리는 입으로는 언제나 정치인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다. 그러나 행동으로는 항상 정치의 울안에 갇혀 자기 나라를 변호하기에만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자기 나라를 변호하고나서 뒤돌아보면 상처를 입은 사람은 언제나 우리 둘뿐이였다. 그녀의 상처는 언제나 내가 준것으로 돼있었고 나의 상처는 그녀가 준것으로 돼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픔뿐만이 아닌 비애까지 느껴야 했다. 어느덧 우리는 상대에게 아픔과 슬픔을 주는 악역으로 슬슬 둔갑해갔다. 점심휴식시간에 한 식탁에서 밥을 먹던 우리는 따로 떨어져서 밥을 먹기 시작했고 1시간의 만남에 아쉬움만 느꼈던 우리는 잠간의 만남도 피하기에 급급했다. 아야의 눈에서 이따금 칼날같은 독기가 번뜩이기 시작한것도 바로 그 무렵이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아야는 대학교때 국제정치를 전공했었다.
서로가 그 무슨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라도 되는것처럼 중국과 일본간에 일어나는 모든 마찰을 걷어안고 티격태격 론쟁을 벌리던 그녀와 나는 지난 마가을에 끝내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치고야말았다. 그날 그녀는 나의 자그마한 실수로 잠간 기계가 멈춘 일을 트집잡아 온 회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야단쳤다.
《중국사람들은 다 이따위 식으로 일해요? 킨상은 지금 뭔가 크게 착각하고있는 모양인데 이제부터 정신을 똑바로 차리세요. 킨상이 지금 일하는 곳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 일본이란 말이예요. 킨상이 상품을 잘못 취급하면 중국의 체면이 깎이는것이 아니라 우리 일본의 체면이 깎여요. 알았어요?!》
그녀의 말은 나에 대한 본격적인 전쟁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중국까지 곁들여가면서 마구 폄하는 그녀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오물을 배설하듯 되는대로 욕을 퍼붓고나서 막 자리를 뜨려하는 그녀를 나는 조용히 불러세웠다.
《아야씨, 나 한사람의 실수를 트집잡아 중국까지 싸잡아 욕해대는 자신이 너무 비굴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아야씨가 이렇듯 요사하고 비루한 인간인줄 몰랐습니다. 좋아요. 내가 이 회사에서 일본의 체면을 깎는 모양인데 이제 이틀만 더 참아줘요. 아야씨를 위해 다음주부터 내가 이 회사에서 영 사라져줄테니까. 이제 됐어요?!》
내가 꽥 소리질렀다. 나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그녀는 한동안 어정쩡한 눈길로 바라볼뿐 아무런 말도 못했다. 사실 다음주부터 회사에서 사라져준다는 나의 말은 그녀를 놀래우기 위한 엄포는 아니였다. 그때 나는 회사는 물론, 일본을 떠나려고 손에 이미 귀국하는 비행기 티켓까지 쥐고있었다.
자리에 뚝 굳어진채 아야가 얼마나 긴 시간 서있었을가. 멈춘 기계가 다시 돌아가고 사원들이 들썩거리면서 저마다 일하는데도 그녀는 그 모든것들이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것처럼 그때까지 나만 노려보고있었다. 독기로 섬뜩이던 그녀의 눈빛은 이미 허물어지고 긴 눈초리가 처마처럼 곱게 드리운 눈에서 어느 한순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있었다. 이발로 지긋이 깨문 입술, 원망으로 가득 찬 눈, 나는 그녀앞에서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고 서있는 그 순간순간이 견딜수 없게 힘들고 괴로웠다. 아! 우리는 결국 이렇게 끝나는것이구나! 허물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혼자 아프게 독백했다.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듯 《정말 실망했어!》하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미친듯이 달려갔다.
내가 일본에서 떠나오던 그 전날은 아야가 휴식하는 수요일이였다. 정작 래일 6년 반이라는 세월을 살았던 일본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중국이 옳니 일본이 그르니 하며 정신없이 아야와 자존심 대결을 벌려왔던 그 모든 일들이 한낱 부질없는 짓처럼 생각되여 후회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한 일로 우리의 진정을 생매장한 자신이 용서할수 없을만큼 미웠다.
나는 그날 일부러 그녀가 살고있는 아빠트가 환히 바라보이는 강가를 오래도록 홀로 서성거렸다. 혹시 만에 하나 그녀가 베란다에 서서 이쪽 강기슭을 바라라도 본다면 그동안 일본인으로 그녀를 밀어내치기만 했던 지난 과거의 비정을 후회하고 오직 인간 그녀만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나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싶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베란다에 잠간이라도 나타나주기를 바랬던 나의 상상을 깨고 그녀는 어느 한순간 태양처럼 강기슭에 나타났다. 나와 똑같은 일직선에서 이쪽을 바라보고있는 그녀의 얼굴은 굳어진듯 오래도록 움직일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