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툴골사람-상(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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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38회 작성일26-08-11 13:42본문
망각된 과거로부터
먼저 까툴골에 대한 력사소개부터 하려고 한다.
까툴골이라고 하면 다들 짐작하겠지만 깊은 산골짜기이다. 경치로 말하면 칠보산의 어느 한 계곡을 련상하면 되는 곳이고.
이 골안에 사람이 처음으로 붙은것은 리조말년때의 산포수들이라고도 하고 대정《천황》의 목을 치겠다고 입산한 도술수련생들이라고도 했는데 이 삼십호 잘되는 마을이 생겨난것은 안의사(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의병대장 안무)를 따라갔던 우리 할아버지대 어른들이 돌아온 뒤부터라고 한다.
까툴골이라는 이름의 유래만은 명백하다. 까투리가 많다는데서 지어진 이름이였다. 아닌게아니라 까투리가 많았다. 광복직전에 장주사라는 자가 쌍대배기렵총에다 매까지 받쳐 들고 장끼란 장끼는 다 잡아없앤데서 더욱 그렇게 됐다고도 한다. 《대동아전쟁》이 막판에 들어섰을 때 남정들이란 남정들은 싹 뽑아가고 맨 아낙네들만 남은 터수로 《과연 까투리골이구나.》라는 우스개말까지 돌았다.
그때 《징용》이나 《보국대》에 의례 뽑힐 대상이지만 그 올가미를 면한 젊은이가 엄한규였다. 그것은 장주사의 《덕》이라면 《덕》이라고 봐야 했다. 간도로 떠나가던 어느 류랑민이 이 골안막바지에 흘려버리고 간 엄한규는 고향도 부모도 미상인 고아였다. 다 해여진 무명두루마기에 감싸여 울고있는 열두살짜리 소년을 다래바위밑에서 발견하여 데려온것은 나의 아버지였다. 칡뿌리와 송기로 근근히 살아가는 집에서 한창 먹어댈 나이의 소년은 큰 부담이였다. 다행히 골안인심이 후해서 오늘은 이 집, 래일은 저 집에서 아이를 돌려가며 먹여주고 돌봤으나 그것도 한두달이지 몇달 지난후부터는 아예 우리 집의 군식구로 어머니의 바가지를 긁게 했다. 《에그, 청승맞은 녀석이 와서-》 어머니는 이렇게 우는소리를 하면서도 자기가 먹던 죽마저 남겼다가는 그의 배만은 곯지 않게 하느라 모지름을 썼다. 엄한규가 열네살이 잡혔을 때 장주사가 이 골안에다 도목수와 미쟁이를 데리고와 촌사람들의 눈이 휘돌아가도록 멋진 집을 짓고 주저앉았다. 린근 200리의 산과 땅의 임자인 그가 도회지를 떠나 이리로 온것은 페가 나쁘기때문에 좋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라는것이였다. 그런데 이 고장사람들은 본래 외지사람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데다가 그가 일본놈의 샅밑에서 알랑거리는 부자라는것으로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이 골안의 령감쟁이들 거개가 한때는 독립군에 관계했고 자기따위에는 외눈도 돌리지 않는다는것을 안 장주사는 집들이에 마을좌상들을 청하는것으로부터 자기의 《덕》을 보였다. 허나 그 잔치판에는 서당집령감 혼자 가서 모두걸이인사를 하고 왔을뿐 누구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장주사는 여간한 인내심이 아니여서 이번에는 엄한규를 자기가 돌보겠노라고 하였다. 마을좌상들과 우리 집안어른들이 두루 의논한 끝에 엄한규를 화전살이의 농군으로 썩일바치고 장주사의 집에 가서 삼시 끼니라도 제대로 먹게끔 하자고 했다.
어머니는 한규를 보낸 날 밤새 울었다.
장주사는 약속대로 엄한규를 괜찮게 돌봐주었다. 우리 집에 있을 때의 엄한규는 눈뜨기 바쁘게 나랑 함께 산판에 올라가 나무를 하고 늘 밭에 붙어 땀을 빼야 했으나 장주사집에 가서는 물이나 길어주고 장작이나 패는 정도였다. 음식도 우리가 먹는 감자범벅이나 송기죽이 아니라 조밥이든 귀밀밥이든 밥을 먹을뿐아니라 때로는 흰쌀밥도 먹는다고 했다. 우리 동생들은 그가 흰쌀밥을 먹는다는 말에 부러워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탈바가지란 오래 못가는 법이다. 한해가 넘기 바쁘게 엄한규는 장주사네 집에서 멍에를 쓴 소의 신세가 되고말았다. 장주사는 《근로》해야 사람이 된다고 하면서 엄한규를 산판에 내몰아 나무하는것으로부터 그 나무를 읍장에 내다 파는 장사일까지 껴묻혀 부려먹었다. 열여섯살이 되자 여느 보통 장정 못지 않게 틀진 체구에 기운이 펄펄해진 엄한규는 《네가 그 집 머슴이 되고말았구나.》라고 한탄하는 우리 어머니의 말에는 오히려 벌씬벌씬 웃으며 《일없수꾸마. 그 집에서 노린내 맡기보다 바람 쐬는게 좋수꾸마.》 하며 우울한 기색이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저녁이면 우리 집에 놀러 오군 하였는데 읍에 가서 보고들은 이야기며 귀결에 배운 창가 같은것을 우리에게 들려주군 하였다. 그는 목청이 좋아 노래를 참 건드러지게 잘 불렀다. 그가 제일 잘 부르는 노래는 《미세 당기세 미세 당기세》라는 톱질군의 타령이였다. 때로 장주사는 엄한규에게 자기의 인력거를 끌게 하면서 그 노래를 부르게 했다. 인력거를 끌고 읍에 갈 때마다 엄한규에게 단벌치기 국방색양복을 입혔다. 물론 읍에 갔다 돌아오면 그 양복은 벗어야 했고 설사 겨울이라 하여도 베옷을 입어야 했다. 우리가 양복쟁이가 되여 인력거를 끌면서 노래를 부르는 그의 일이 가슴아파 비웃는 말을 할라치면 그는 씨물씨물 웃었다.
《노래야 내가 부르고싶어 부르는걸.》
그런데 그가 부르는 《미세 당기세》는 때와 장소에 따라 곡조와 가락이 변하군 하였는데 어떤 때는 슬픈가 하면 어떤 때는 더없이 유쾌하였다. 인력거를 끌 때면 골안메부리가 다 울릴 정도로 굵고 탁한 소리를 내였는데 얼핏 들으면 즐거운것 같았으나 우리 어머니나 동리어른들은 보기 민망하여 외면하군 하였고 나도 속이 좋지 않았다.
엄한규는 종이 되고만것이다. 그 억센 체격과 락천적인 행동거지는 어찌하든 그는 장주사의 입짓, 눈짓에 따라 개처럼 움직이게 된것이다.
장주사는 인물 좋고 씨원씨원한 엄한규를 늘 몸에 붙이고 다녔다. 특히 꿩사냥 같은데는 꼭 데리고갔다. 물푸레몽둥이와 양푼을 든 엄한규는 《후여! 후여! 까투리야!-》 하고 소리치며 실로 삽살개처럼 가파로운 산비탈을 주름잡아 내달렸다. 몰이군으로는 그 이상 당할 사람이 없었다. 그가 산판에서 고함을 치고 팔각뜀을 시작하면 까투리건 장끼건 다 하늘로 떴고 놀란 짐승들이 네굽을 쳐 도망쳤다. 어슬어슬한 해거름녘이면 엄한규는 웃동을 벗어 제낀 몸에 화려한 깃털이 번쩍이는 꿩들을 줄느런히 달아매고 골짝길을 내리였다. 그뒤에서는 장주사가 렵총을 거꾸로 메고 어슬렁어슬렁 따르고.
동리늙은이들은 그 모양에 혀를 찼으나 마을처녀들은 그의 구리빛잔등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문짬으로 지켜보았고 딸둔 어머니들은 한숨을 지었다. 이 마을처녀치고 그를 싫어하는 처녀가 없었고 어머니들 역시 같았다. 허나 악진 집념으로 굳어진 타관사람에 대한 경원과 장주사의 종이라는 배타심으로 하여 그에게 끌려가는 마음을 붙잡아맸다. 마을청년들이 거의다 《징용》과 《보국대》로 끌려가자 총각으로서 그의 인끔은 더욱 높아지였다. 그러나 그의 뒤모습을 반한 눈길로 보던 처녀들도 일단 그가 접근하고 수작을 붙일라치면 외면하였다. 입이 살찬 서당집 춘영이는 《체, 부자꼬랑지 같은거.》 하고 맵짜게 쏴붙이기도 하였다. 그럴 때도 한규는 성을 내지 않았다. 겨우내 트고 여름내 탄 적동색얼굴이 약간 어두워졌을뿐 오히려 웃었다. 그렇다해서 바보스럽게는 보이지 않았다.
광복되기 이태전 늦가을이였다.
돌개소 여울목에서 세천어잡이로 반두질을 하던 나는(그때 나는 징병을 피하기 위해 면에서 하는 신체검사때 간장을 많이 마신 관계로 속탈을 만났다. 그 치료에 세천어가 좋다고 하여 저녁마다 이 놀음을 하였다.) 장주사와 함께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한규를 보았다.
산판을 싸다니느라 땀주머니가 된 장주사는 한규와 함께 돌개소앞 너럭바위에 앉아 땀을 들이고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각 새바람이 일며 장주사의 민머리를 가리우고있던 맥고모가 훌 들려날다가 돌개소에 빠졌다. 장주사는 민머리를 감싸쥐며 아부재기를 쳤다.
《야 엄쇠야,(그는 한규를 이렇게 불렀다.) 저걸 건져야겠다. 저건 셍기찌어른의 선물이다, 선물!》
그 소리를 들은 나는 기가 막혔다. 셍기찌라는것이 도지사인가 하는 놈이라는것을 한규를 통해 알았지만 제아무리 하내비 같은 놈의 선물일지라도 여하튼 모자에 불과하지 않는가. 더구나 거품을 떠인 물살이 모자를 안고 뱅뱅 돌아 가는 돌개소의 한가운데는 아직 누구도 헤염쳐 가보지 않은 곳이였다. 너덧발 되는 통나무도 그 소가운데로 말려들면 눈깜박할새 사라졌다가 한참 지나서야 아래여울목에서 다시 솟구쳐나오는것이였다. 그런데 더 한심한것은 엄한규가 아무 주저없이 베적삼을 훌 벗어버리더니 첨벙 하고 그 소에 뛰여드는것이였다. 늦가을의 산골물이란 얼음같이 찬데.
《한규야!》
내가 목이 터지게 불렀으나 절벽만 메아리를 일으킬뿐 한규는 돌아보지조차 않았다. 잠시후 거품을 물고 원을 그리는 물살과 함께 엄한규의 몸이 풀잎처럼 돌아갔다. 그런데도 연신 팔을 허우적거리더니 끝내는 모자를 움켜쥐는것이였다. 그 찰나 일이 벌어졌다. 한규가 몸을 솟구쳐 되돌아서는가싶더니 강한 물흐름에 끌려 팽이처럼 돌며 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되자 장주사도 벌떡 일어나 당황한 꼴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한규야!》 하고 울음질린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그쪽 기슭으로 올리달렸다. 그러나 몇발자국 못 가서 멈춰서고말았다. 열둬걸음앞 물녘으로 엄한규가 기여나오는것이 아닌가. 조약돌이 하얗게 드러나보이는 강녘에 이르자 우르르 몸을 떨며 일어난 그는 재채기를 하였다. 소름이 파랗게 돋은 손에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맥고모가 들려있었다. 나를 알아본 그는 비죽이 웃어까지 보였다. 나는 그만 눈물이 콱 솟구쳤다.
《에익, 죽기나 하지.》
그날 밤 엄한규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제마!(그는 우리 어머니를 이렇게 불렀다.) 나요. 문… 열어주…》
숨이 넘어가는 소리였다. 문을 열자 그는 비칠거리며 들어와서는 노전우에 맥없이 쓰러졌다. 눈은 감겨있었고 얼굴은 불덩이 같았다. 낮에 있은 사연을 들었던 아버지는 그가 독감에 걸렸다고 했다. 침술을 하는 서당집령감을 데려오고 이집저집에서 꿀이며 산저담이며 약재로 쓰인다는것은 닥치는대로 가져왔다.
서당집할아버지가 이마에 피칠이 랑자하게 입침을 놓고 또 무슨 약을 달여먹이게 하고 어머니가 밤새 물수건을 싸들고 시중한 끝에 새벽녘에는 한결 피여 났다. 한규는 다음날까지 내처 우리 집에 있었다. 장주사가 닭알 몇알과 아스피린 몇알을 보내왔으나 성질이 괴퍅한 우리 아버지는 고스란히 되돌려보냈다.
오후녘이 되자 한규가 수건을 싸맨채 감자움을 고쳐파는 나의 일을 돕겠다고 밖에 나왔다. 나는 그를 보는척도 안했다. 아무리 매여사는 몸이기로서니 모자 하나때문에 사지에 발을 들여미는 천치가 어데 있단 말인가.
《흥, 멋있더구나. 삽살개!》
《어른보고 무슨 수작질!… 내 그 두상한테 본때를 보여주려구 그랬다.》
한규는 장작더미우에 주저앉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의 대답과 웃는 꼴이 더욱 밉살스러웠다.
《본때를?… 사람이 인두겁을 썼으면 사람답게 뼈대가 있어야지. 그 구린내나는 놈의 밑시중이 그리 좋단 말이냐. 우리 집에선 남의 자식 데려다 일시키는게 죄스럽다고 너를 보냈다만 장주사의 종노릇하는걸 보면 가슴이 터진다고 한다. 그런데 넌 뭐가 좋아 늘 닐리리요 당기세요 하며 히죽벌쭉 하느냐 말이야. 내 같으면 그놈을 인력거채로 뒤집어놓고 삼십륙계를 한지 오랬겠다. 네 기운에, 네 일솜씨에 어데 가서 밥술을 곯겠니.》
나의 말에 한규는 고개를 푹 떨군채 옴짝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반응이 없는통에 입을 다물고보니 그의 거북등같이 갈라지고 터진 손잔등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매발톱에 긁히우고 겨울추위에 얼어터지고 나무가시에 찔린 손, 손톱들은 어제 낮 강바닥을 훑어나오며 그렇게 되였는지 무드러진채 피가 뻘겋게 고여있었다. 걷어올린 무르팍은 돌에 찧어 퍼렇게 멍이 들고…
《에이.》
내가 화김에 다시 괭이질을 하려 하자 그가 내 팔을 잡았다.
《그래 넌 내가 울었음 좋겠니, 그 두상앞에서, 그러구 마을어른들앞에서 울며 다님 좋겠는가 말이다. 종살이가 설버(슬퍼) 내가 울고 댕기면 넌 그렇다치고 제마랑 아부지랑… 동네어른들이 얼마나 가슴아파하겠니. 그렇다해 내가 가면 어델 간다는거냐? 난 이 동리를 뜰 생각이 없다. 내쫓아두 말이다. 난 부모가 없어. 부모를 잃고 이웃따라 떠돌아 다니다가… 여기선 모두가 나를 혈붙이처럼 봐주었다. 난 장주사밑에서 아무리 괴로와두 이 동리어른들을, 제마랑, 맏아바이랑 보면 가슴 얹힌것이 다 풀린다. 난 그래서…》
한규는 여기서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이제껏 감추고있던 온갖 설음이 터져나와 억센 몸집을 폭풍 맞은 나무처럼 떨게 하고 진한 눈물을 비처럼 쏟아 지게 한것이다.
《한규야!》
나는 괭이를 뿌리치고 그를 콱 그러안았다. 박달나무 같은 어깨가 와득와득 소리를 내는것 같았다. 결국 한규는 나의 숨김없는 비난의 말에 속을 터뜨려 보인셈이였다. 그런데 나는 얼마후에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줄은 몰랐다.
첫눈이 온 다음날이였다. 우리 집 맞은편 둔덕에 있는 장주사네 집쪽에서 한방의 총소리가 터졌다. 뒤미처 《살인이다!》 하는 괴성이 들려왔다. 짚신을 삼고있던 나는 무언가 불길한 예감에 질려 맨발바람으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장주사네 집쪽으로 마을사람들 여럿이 내닫는것을 보고 정신없이 달려갔다.
대문은 열려진채였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차거운 너털웃음과 가쁜 숨소리, 뭔가 줴박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문안에 들어서던 나는 발을 딱 멈추고말았다. 대문 안마당에는 래일모레 아들잔치를 치르게 된 꼽새령감이 쪽발구끈을 감쳐쥔채 부들부들 떨며 대청마루쪽을 보고있었다.
거기에는 장주사와 맞붙어선 엄한규가 있었다. 그의 베옷잔등은 갈기갈기 찢어진데다가 피에 화락하니 젖어있었다. 줄줄이 흘러내리는 피는 베바지아래단까지를 벌겋게 물들이고있었다.
장주사의 처첩들이 그의 어깨며 팔에 매여달려 새된 소리를 내지르며 기승을 떨었다.
한규는 왼손으로 장주사의 저고리목깃을 틀어 잡고 오른손을 천천히 들었다가는 철썩! 하고 뺨을 후려쳤다. 그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어깨에 매달렸던 장주사의 처첩따위들이 나동그라지였다. 장주사는 얼굴이 죽장처럼 부어오른채 금시라도 숨이 넘어갈것같이 할딱거리였다.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 었다.
한규의 얼굴은 재빛을 띠고있었다. 삐뚜름하게 한쪽 귀가 처져 올라간 입술은 퍼렇다못해 꺼멓게 보였다. 그런데 그는 이따금 히죽히죽 웃는것이 아닌가. 나는 무엇보다 그가 미치지 않았는가 하고 겁을 먹었다.
《자, 이건 똥푸개질값이다.》
또다시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장주사가 아이고 소리를 질렀다.
《이건 쉰밥을 먹인 값이고-》
한규는 매우 침착한 동작으로 이번에는 장주사의 눈통을 쥐여박았다.
《한규, 이게 무슨짓이요?》
나는 얼결에 달려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희번득이는 눈이 불줄기처럼 나에게 닿았다. 그러나 나를 알아보자 크고 흰 이를 보이며 싱긋 웃었다.
《회계를 보는중이다. 회계를!》
그가 한번 용을 쓰자 나는 저만치 밀려나갔다. 나의 아버지며 여러 어른들이 달려들어 그를 간신히 떼여내였다. 장주사는 멱찔린 돼지처럼 늘어져 움씰하지 못했다. 한규는 대문밖으로 안겨나오다가 번득이는 눈길로 돌아보았다.
《동리어른들덕에 명이 남은줄 알아라.》
한규는 이 말을 남기고 대문밖에 나와 몇걸음 걷다가 꼬꾸라지였다. 입으로 피를 토했다. 조금 있어 여러사람의 부축을 받아 일떠난 그는 끄는대로 걸음을 옮겼다. 텀벙텀벙 눈물을 쏟으며 뒤따르는 꼽새령감의 이야기를 통해 사태를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었다.
꼽새령감은 아들잔치준비로 초가을부터 산에 옹노며 덫을 놓았다. 이날 새벽에도 여느 때의 일과처럼 옹노를 돌아보던 그는 소발통 같은 메돼지발자국이 매바위등밑에 놓은 옹노쪽으로 향한것을 보았다. 얼싸좋다 하고 달려가니 옹노자리는 장정 네댓이 붙안고 싸운 자리인듯 흙이 다 패여나가고 옹노는 풀려진채로였다. 꼽새령감은 그 주변을 살피다가 두사람의 발자국이 아래로 뻗었고 잡관목들이 소 한마리폭으로 깨끗이 눕혀져있는것을 보았다. 그는 옹노에 붙어있던 메돼지털을 떼내가지고 그 자취를 따랐다. 쓰러진 나무가지들에도 메돼지털이 듬성듬성 붙어있었다. 그 흔적과 발자국은 장주사네 집으로 곧추 들어갔다. 륙십평생을 살면서 남의 옹노에 걸린 짐승을 제것으로 만드는 법이란 없는 이곳 인심에 습관된 꼽새령감은 쪽발구를 끌고 다시 와 장주사를 찾았다. 《메돼지를 끌고와주어서 감사하온데 그만 이젠 내가 가져가겠습니다.》 하고 꼽새령감이 말하자 장주사는 이 무슨 괴변날 소린가고 펄펄 뛰였다. 그 호통소리에 소먹이를 끓이던 한규가 나왔다.
《한규, 이 사람, 그래 우리 옹노에 걸린 메돼지를 끌어오지 않았나? 바루 좀 말해보게.》
꼽새령감은 눈에 눈물이 그렁해 마지막으로 한규에게 애원하듯 물었다. 한규는 눈덮인 산발을 쏘다니느라 바지자락이 온통 눈투성이인데다가 눈물, 코물이 수염에 매달려 떨고있는 꼽새령감을 보다가 흔연히 대꾸했다.
《아바이네 옹노에서 가져왔수꾸마. 돌려드리겠 지요.》
그 말에 장주사는 낯이 익은 가재가 되여 볼편을 푸들푸들 떨었다.
《주사님, 그럼 이젠 그만 롱담을 하고 돌려주시우다.》
꼽새령감은 너무 반가운김에 덥석 무릎까지 꿇고 억지웃음을 지어보이며 장주사에게 간청했다. 장주사는 썩은 콩 씹은 상으로 꼽새령감을 아니꼽게 노려보다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령감의 옹노건 아니건 다 상관없어. 여기 산판은 내 관할이야. 허가없이 옹노를 놓은것도 괘씸 한데 잡은 즘생을 끝내 가지러 드는 소위가 괘씸 해. 그러니 두말말고 돌아가라구. 그리고 마을에도 알리게. 이제부터 내 허가없인 메토끼 한마리 못 잡는다고. 되지 못한것들이 남의 산판에서 감자알이라도 심어먹는걸 대수로 보지 않고 짐승까지… 썩 물러가.》
꼽새령감은 화들화들 떠는 무릎을 겨우 펴 일어 났다. 목구멍에서는 가래만 끓을뿐 아무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때 한규가 픽 돌아서 씨엉씨엉 걸어 갔다. 삐거덕- 하고 허청간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100키로는 실히 될 메돼지를 꿍쳐메고 돌아나왔다.
《아바이, 갑시다.》
그는 한마디 하고는 장주사쪽은 보지도 않고 걸어 나갔다. 장주사의 벽력 같은 고함도, 개화장으로 들이지르는 매채도 그의 걸음을 멈춰세우지 못했다. 기가 뒤집힌 장주사는 쌍대배기렵총을 벗겨가지고 나와 대문턱을 넘어서는 한규를 쏘았다. 다행히 재워진것은 산탄이였다. 한규는 불로 지지는듯 한 아픔이겠건만 비칠했을뿐 넘어지지는 않았다. 메돼지를 뿌리쳐내리고 돌아섰다. 몇초동안 꼼짝 않고 장주사를 노려보던 한규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 기가 질린 장주사는 총을 든채 뒤걸음치다가 대청마루에 걸려 넘어졌다. 한규는 뜨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다가갔다.…
한규의 잔등은 국수분틀처럼 구멍이 송송했다. 연알들을 파내고 그 자리에 솜을 태워 붙였다. 나 도 울고 어머니도 울었으나 한규만은 꿈쩍하지 않았다.
《아프지?》
아버지가 물으면 《아니, 뜨끔도 안하우다.》 하며 흰소리를 쳤다. 잔등을 다 지지고 느릅나무껍질을 붙인후 어머니의 단벌 머리수건으로 감아맸을 때 그는 찬물을 찾았다. 그때 나는 그의 입술에 이발자리가 깊이 패이고 산탄알에 왼손새끼손가락이 무질러진것도 알아보았다.
한규는 이날 밤으로 우리 집을, 우리 동네를 떠났다. 장주사가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르는 형편에서 그의 걸음을 막을수 없었다. 그는 우리 집에 모인 동리어른들과 나의 부모님께 무릎절을 하고는 노전바닥에 이마를 대인채 한참이나 서럽게 울었다. 그러나 동구밖을 벗어날 때는 헌헌한 장부의 태도였다. 나와 서당집 춘영이가 그를 바래주었다.
희푸른 쪼각달빛에 거밋거밋한 산그림자가 길게 누운 발구길로 한창 내려가던 그는 마을이 어슴푸레 멀어지는 달구지길에 들어서자 불현듯 씩씩한 태도로 말을 하였다.
《내 노래 부르라니?》
그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목갈린 소리로 청을 뽑았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월궁속 선녀각시
님 찾아 나는 간다
먼저 까툴골에 대한 력사소개부터 하려고 한다.
까툴골이라고 하면 다들 짐작하겠지만 깊은 산골짜기이다. 경치로 말하면 칠보산의 어느 한 계곡을 련상하면 되는 곳이고.
이 골안에 사람이 처음으로 붙은것은 리조말년때의 산포수들이라고도 하고 대정《천황》의 목을 치겠다고 입산한 도술수련생들이라고도 했는데 이 삼십호 잘되는 마을이 생겨난것은 안의사(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의병대장 안무)를 따라갔던 우리 할아버지대 어른들이 돌아온 뒤부터라고 한다.
까툴골이라는 이름의 유래만은 명백하다. 까투리가 많다는데서 지어진 이름이였다. 아닌게아니라 까투리가 많았다. 광복직전에 장주사라는 자가 쌍대배기렵총에다 매까지 받쳐 들고 장끼란 장끼는 다 잡아없앤데서 더욱 그렇게 됐다고도 한다. 《대동아전쟁》이 막판에 들어섰을 때 남정들이란 남정들은 싹 뽑아가고 맨 아낙네들만 남은 터수로 《과연 까투리골이구나.》라는 우스개말까지 돌았다.
그때 《징용》이나 《보국대》에 의례 뽑힐 대상이지만 그 올가미를 면한 젊은이가 엄한규였다. 그것은 장주사의 《덕》이라면 《덕》이라고 봐야 했다. 간도로 떠나가던 어느 류랑민이 이 골안막바지에 흘려버리고 간 엄한규는 고향도 부모도 미상인 고아였다. 다 해여진 무명두루마기에 감싸여 울고있는 열두살짜리 소년을 다래바위밑에서 발견하여 데려온것은 나의 아버지였다. 칡뿌리와 송기로 근근히 살아가는 집에서 한창 먹어댈 나이의 소년은 큰 부담이였다. 다행히 골안인심이 후해서 오늘은 이 집, 래일은 저 집에서 아이를 돌려가며 먹여주고 돌봤으나 그것도 한두달이지 몇달 지난후부터는 아예 우리 집의 군식구로 어머니의 바가지를 긁게 했다. 《에그, 청승맞은 녀석이 와서-》 어머니는 이렇게 우는소리를 하면서도 자기가 먹던 죽마저 남겼다가는 그의 배만은 곯지 않게 하느라 모지름을 썼다. 엄한규가 열네살이 잡혔을 때 장주사가 이 골안에다 도목수와 미쟁이를 데리고와 촌사람들의 눈이 휘돌아가도록 멋진 집을 짓고 주저앉았다. 린근 200리의 산과 땅의 임자인 그가 도회지를 떠나 이리로 온것은 페가 나쁘기때문에 좋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라는것이였다. 그런데 이 고장사람들은 본래 외지사람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데다가 그가 일본놈의 샅밑에서 알랑거리는 부자라는것으로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이 골안의 령감쟁이들 거개가 한때는 독립군에 관계했고 자기따위에는 외눈도 돌리지 않는다는것을 안 장주사는 집들이에 마을좌상들을 청하는것으로부터 자기의 《덕》을 보였다. 허나 그 잔치판에는 서당집령감 혼자 가서 모두걸이인사를 하고 왔을뿐 누구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장주사는 여간한 인내심이 아니여서 이번에는 엄한규를 자기가 돌보겠노라고 하였다. 마을좌상들과 우리 집안어른들이 두루 의논한 끝에 엄한규를 화전살이의 농군으로 썩일바치고 장주사의 집에 가서 삼시 끼니라도 제대로 먹게끔 하자고 했다.
어머니는 한규를 보낸 날 밤새 울었다.
장주사는 약속대로 엄한규를 괜찮게 돌봐주었다. 우리 집에 있을 때의 엄한규는 눈뜨기 바쁘게 나랑 함께 산판에 올라가 나무를 하고 늘 밭에 붙어 땀을 빼야 했으나 장주사집에 가서는 물이나 길어주고 장작이나 패는 정도였다. 음식도 우리가 먹는 감자범벅이나 송기죽이 아니라 조밥이든 귀밀밥이든 밥을 먹을뿐아니라 때로는 흰쌀밥도 먹는다고 했다. 우리 동생들은 그가 흰쌀밥을 먹는다는 말에 부러워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탈바가지란 오래 못가는 법이다. 한해가 넘기 바쁘게 엄한규는 장주사네 집에서 멍에를 쓴 소의 신세가 되고말았다. 장주사는 《근로》해야 사람이 된다고 하면서 엄한규를 산판에 내몰아 나무하는것으로부터 그 나무를 읍장에 내다 파는 장사일까지 껴묻혀 부려먹었다. 열여섯살이 되자 여느 보통 장정 못지 않게 틀진 체구에 기운이 펄펄해진 엄한규는 《네가 그 집 머슴이 되고말았구나.》라고 한탄하는 우리 어머니의 말에는 오히려 벌씬벌씬 웃으며 《일없수꾸마. 그 집에서 노린내 맡기보다 바람 쐬는게 좋수꾸마.》 하며 우울한 기색이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저녁이면 우리 집에 놀러 오군 하였는데 읍에 가서 보고들은 이야기며 귀결에 배운 창가 같은것을 우리에게 들려주군 하였다. 그는 목청이 좋아 노래를 참 건드러지게 잘 불렀다. 그가 제일 잘 부르는 노래는 《미세 당기세 미세 당기세》라는 톱질군의 타령이였다. 때로 장주사는 엄한규에게 자기의 인력거를 끌게 하면서 그 노래를 부르게 했다. 인력거를 끌고 읍에 갈 때마다 엄한규에게 단벌치기 국방색양복을 입혔다. 물론 읍에 갔다 돌아오면 그 양복은 벗어야 했고 설사 겨울이라 하여도 베옷을 입어야 했다. 우리가 양복쟁이가 되여 인력거를 끌면서 노래를 부르는 그의 일이 가슴아파 비웃는 말을 할라치면 그는 씨물씨물 웃었다.
《노래야 내가 부르고싶어 부르는걸.》
그런데 그가 부르는 《미세 당기세》는 때와 장소에 따라 곡조와 가락이 변하군 하였는데 어떤 때는 슬픈가 하면 어떤 때는 더없이 유쾌하였다. 인력거를 끌 때면 골안메부리가 다 울릴 정도로 굵고 탁한 소리를 내였는데 얼핏 들으면 즐거운것 같았으나 우리 어머니나 동리어른들은 보기 민망하여 외면하군 하였고 나도 속이 좋지 않았다.
엄한규는 종이 되고만것이다. 그 억센 체격과 락천적인 행동거지는 어찌하든 그는 장주사의 입짓, 눈짓에 따라 개처럼 움직이게 된것이다.
장주사는 인물 좋고 씨원씨원한 엄한규를 늘 몸에 붙이고 다녔다. 특히 꿩사냥 같은데는 꼭 데리고갔다. 물푸레몽둥이와 양푼을 든 엄한규는 《후여! 후여! 까투리야!-》 하고 소리치며 실로 삽살개처럼 가파로운 산비탈을 주름잡아 내달렸다. 몰이군으로는 그 이상 당할 사람이 없었다. 그가 산판에서 고함을 치고 팔각뜀을 시작하면 까투리건 장끼건 다 하늘로 떴고 놀란 짐승들이 네굽을 쳐 도망쳤다. 어슬어슬한 해거름녘이면 엄한규는 웃동을 벗어 제낀 몸에 화려한 깃털이 번쩍이는 꿩들을 줄느런히 달아매고 골짝길을 내리였다. 그뒤에서는 장주사가 렵총을 거꾸로 메고 어슬렁어슬렁 따르고.
동리늙은이들은 그 모양에 혀를 찼으나 마을처녀들은 그의 구리빛잔등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문짬으로 지켜보았고 딸둔 어머니들은 한숨을 지었다. 이 마을처녀치고 그를 싫어하는 처녀가 없었고 어머니들 역시 같았다. 허나 악진 집념으로 굳어진 타관사람에 대한 경원과 장주사의 종이라는 배타심으로 하여 그에게 끌려가는 마음을 붙잡아맸다. 마을청년들이 거의다 《징용》과 《보국대》로 끌려가자 총각으로서 그의 인끔은 더욱 높아지였다. 그러나 그의 뒤모습을 반한 눈길로 보던 처녀들도 일단 그가 접근하고 수작을 붙일라치면 외면하였다. 입이 살찬 서당집 춘영이는 《체, 부자꼬랑지 같은거.》 하고 맵짜게 쏴붙이기도 하였다. 그럴 때도 한규는 성을 내지 않았다. 겨우내 트고 여름내 탄 적동색얼굴이 약간 어두워졌을뿐 오히려 웃었다. 그렇다해서 바보스럽게는 보이지 않았다.
광복되기 이태전 늦가을이였다.
돌개소 여울목에서 세천어잡이로 반두질을 하던 나는(그때 나는 징병을 피하기 위해 면에서 하는 신체검사때 간장을 많이 마신 관계로 속탈을 만났다. 그 치료에 세천어가 좋다고 하여 저녁마다 이 놀음을 하였다.) 장주사와 함께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한규를 보았다.
산판을 싸다니느라 땀주머니가 된 장주사는 한규와 함께 돌개소앞 너럭바위에 앉아 땀을 들이고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각 새바람이 일며 장주사의 민머리를 가리우고있던 맥고모가 훌 들려날다가 돌개소에 빠졌다. 장주사는 민머리를 감싸쥐며 아부재기를 쳤다.
《야 엄쇠야,(그는 한규를 이렇게 불렀다.) 저걸 건져야겠다. 저건 셍기찌어른의 선물이다, 선물!》
그 소리를 들은 나는 기가 막혔다. 셍기찌라는것이 도지사인가 하는 놈이라는것을 한규를 통해 알았지만 제아무리 하내비 같은 놈의 선물일지라도 여하튼 모자에 불과하지 않는가. 더구나 거품을 떠인 물살이 모자를 안고 뱅뱅 돌아 가는 돌개소의 한가운데는 아직 누구도 헤염쳐 가보지 않은 곳이였다. 너덧발 되는 통나무도 그 소가운데로 말려들면 눈깜박할새 사라졌다가 한참 지나서야 아래여울목에서 다시 솟구쳐나오는것이였다. 그런데 더 한심한것은 엄한규가 아무 주저없이 베적삼을 훌 벗어버리더니 첨벙 하고 그 소에 뛰여드는것이였다. 늦가을의 산골물이란 얼음같이 찬데.
《한규야!》
내가 목이 터지게 불렀으나 절벽만 메아리를 일으킬뿐 한규는 돌아보지조차 않았다. 잠시후 거품을 물고 원을 그리는 물살과 함께 엄한규의 몸이 풀잎처럼 돌아갔다. 그런데도 연신 팔을 허우적거리더니 끝내는 모자를 움켜쥐는것이였다. 그 찰나 일이 벌어졌다. 한규가 몸을 솟구쳐 되돌아서는가싶더니 강한 물흐름에 끌려 팽이처럼 돌며 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되자 장주사도 벌떡 일어나 당황한 꼴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한규야!》 하고 울음질린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그쪽 기슭으로 올리달렸다. 그러나 몇발자국 못 가서 멈춰서고말았다. 열둬걸음앞 물녘으로 엄한규가 기여나오는것이 아닌가. 조약돌이 하얗게 드러나보이는 강녘에 이르자 우르르 몸을 떨며 일어난 그는 재채기를 하였다. 소름이 파랗게 돋은 손에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맥고모가 들려있었다. 나를 알아본 그는 비죽이 웃어까지 보였다. 나는 그만 눈물이 콱 솟구쳤다.
《에익, 죽기나 하지.》
그날 밤 엄한규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제마!(그는 우리 어머니를 이렇게 불렀다.) 나요. 문… 열어주…》
숨이 넘어가는 소리였다. 문을 열자 그는 비칠거리며 들어와서는 노전우에 맥없이 쓰러졌다. 눈은 감겨있었고 얼굴은 불덩이 같았다. 낮에 있은 사연을 들었던 아버지는 그가 독감에 걸렸다고 했다. 침술을 하는 서당집령감을 데려오고 이집저집에서 꿀이며 산저담이며 약재로 쓰인다는것은 닥치는대로 가져왔다.
서당집할아버지가 이마에 피칠이 랑자하게 입침을 놓고 또 무슨 약을 달여먹이게 하고 어머니가 밤새 물수건을 싸들고 시중한 끝에 새벽녘에는 한결 피여 났다. 한규는 다음날까지 내처 우리 집에 있었다. 장주사가 닭알 몇알과 아스피린 몇알을 보내왔으나 성질이 괴퍅한 우리 아버지는 고스란히 되돌려보냈다.
오후녘이 되자 한규가 수건을 싸맨채 감자움을 고쳐파는 나의 일을 돕겠다고 밖에 나왔다. 나는 그를 보는척도 안했다. 아무리 매여사는 몸이기로서니 모자 하나때문에 사지에 발을 들여미는 천치가 어데 있단 말인가.
《흥, 멋있더구나. 삽살개!》
《어른보고 무슨 수작질!… 내 그 두상한테 본때를 보여주려구 그랬다.》
한규는 장작더미우에 주저앉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의 대답과 웃는 꼴이 더욱 밉살스러웠다.
《본때를?… 사람이 인두겁을 썼으면 사람답게 뼈대가 있어야지. 그 구린내나는 놈의 밑시중이 그리 좋단 말이냐. 우리 집에선 남의 자식 데려다 일시키는게 죄스럽다고 너를 보냈다만 장주사의 종노릇하는걸 보면 가슴이 터진다고 한다. 그런데 넌 뭐가 좋아 늘 닐리리요 당기세요 하며 히죽벌쭉 하느냐 말이야. 내 같으면 그놈을 인력거채로 뒤집어놓고 삼십륙계를 한지 오랬겠다. 네 기운에, 네 일솜씨에 어데 가서 밥술을 곯겠니.》
나의 말에 한규는 고개를 푹 떨군채 옴짝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반응이 없는통에 입을 다물고보니 그의 거북등같이 갈라지고 터진 손잔등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매발톱에 긁히우고 겨울추위에 얼어터지고 나무가시에 찔린 손, 손톱들은 어제 낮 강바닥을 훑어나오며 그렇게 되였는지 무드러진채 피가 뻘겋게 고여있었다. 걷어올린 무르팍은 돌에 찧어 퍼렇게 멍이 들고…
《에이.》
내가 화김에 다시 괭이질을 하려 하자 그가 내 팔을 잡았다.
《그래 넌 내가 울었음 좋겠니, 그 두상앞에서, 그러구 마을어른들앞에서 울며 다님 좋겠는가 말이다. 종살이가 설버(슬퍼) 내가 울고 댕기면 넌 그렇다치고 제마랑 아부지랑… 동네어른들이 얼마나 가슴아파하겠니. 그렇다해 내가 가면 어델 간다는거냐? 난 이 동리를 뜰 생각이 없다. 내쫓아두 말이다. 난 부모가 없어. 부모를 잃고 이웃따라 떠돌아 다니다가… 여기선 모두가 나를 혈붙이처럼 봐주었다. 난 장주사밑에서 아무리 괴로와두 이 동리어른들을, 제마랑, 맏아바이랑 보면 가슴 얹힌것이 다 풀린다. 난 그래서…》
한규는 여기서 어깨를 떨며 흐느꼈다. 이제껏 감추고있던 온갖 설음이 터져나와 억센 몸집을 폭풍 맞은 나무처럼 떨게 하고 진한 눈물을 비처럼 쏟아 지게 한것이다.
《한규야!》
나는 괭이를 뿌리치고 그를 콱 그러안았다. 박달나무 같은 어깨가 와득와득 소리를 내는것 같았다. 결국 한규는 나의 숨김없는 비난의 말에 속을 터뜨려 보인셈이였다. 그런데 나는 얼마후에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줄은 몰랐다.
첫눈이 온 다음날이였다. 우리 집 맞은편 둔덕에 있는 장주사네 집쪽에서 한방의 총소리가 터졌다. 뒤미처 《살인이다!》 하는 괴성이 들려왔다. 짚신을 삼고있던 나는 무언가 불길한 예감에 질려 맨발바람으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장주사네 집쪽으로 마을사람들 여럿이 내닫는것을 보고 정신없이 달려갔다.
대문은 열려진채였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차거운 너털웃음과 가쁜 숨소리, 뭔가 줴박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문안에 들어서던 나는 발을 딱 멈추고말았다. 대문 안마당에는 래일모레 아들잔치를 치르게 된 꼽새령감이 쪽발구끈을 감쳐쥔채 부들부들 떨며 대청마루쪽을 보고있었다.
거기에는 장주사와 맞붙어선 엄한규가 있었다. 그의 베옷잔등은 갈기갈기 찢어진데다가 피에 화락하니 젖어있었다. 줄줄이 흘러내리는 피는 베바지아래단까지를 벌겋게 물들이고있었다.
장주사의 처첩들이 그의 어깨며 팔에 매여달려 새된 소리를 내지르며 기승을 떨었다.
한규는 왼손으로 장주사의 저고리목깃을 틀어 잡고 오른손을 천천히 들었다가는 철썩! 하고 뺨을 후려쳤다. 그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어깨에 매달렸던 장주사의 처첩따위들이 나동그라지였다. 장주사는 얼굴이 죽장처럼 부어오른채 금시라도 숨이 넘어갈것같이 할딱거리였다.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 었다.
한규의 얼굴은 재빛을 띠고있었다. 삐뚜름하게 한쪽 귀가 처져 올라간 입술은 퍼렇다못해 꺼멓게 보였다. 그런데 그는 이따금 히죽히죽 웃는것이 아닌가. 나는 무엇보다 그가 미치지 않았는가 하고 겁을 먹었다.
《자, 이건 똥푸개질값이다.》
또다시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장주사가 아이고 소리를 질렀다.
《이건 쉰밥을 먹인 값이고-》
한규는 매우 침착한 동작으로 이번에는 장주사의 눈통을 쥐여박았다.
《한규, 이게 무슨짓이요?》
나는 얼결에 달려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희번득이는 눈이 불줄기처럼 나에게 닿았다. 그러나 나를 알아보자 크고 흰 이를 보이며 싱긋 웃었다.
《회계를 보는중이다. 회계를!》
그가 한번 용을 쓰자 나는 저만치 밀려나갔다. 나의 아버지며 여러 어른들이 달려들어 그를 간신히 떼여내였다. 장주사는 멱찔린 돼지처럼 늘어져 움씰하지 못했다. 한규는 대문밖으로 안겨나오다가 번득이는 눈길로 돌아보았다.
《동리어른들덕에 명이 남은줄 알아라.》
한규는 이 말을 남기고 대문밖에 나와 몇걸음 걷다가 꼬꾸라지였다. 입으로 피를 토했다. 조금 있어 여러사람의 부축을 받아 일떠난 그는 끄는대로 걸음을 옮겼다. 텀벙텀벙 눈물을 쏟으며 뒤따르는 꼽새령감의 이야기를 통해 사태를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었다.
꼽새령감은 아들잔치준비로 초가을부터 산에 옹노며 덫을 놓았다. 이날 새벽에도 여느 때의 일과처럼 옹노를 돌아보던 그는 소발통 같은 메돼지발자국이 매바위등밑에 놓은 옹노쪽으로 향한것을 보았다. 얼싸좋다 하고 달려가니 옹노자리는 장정 네댓이 붙안고 싸운 자리인듯 흙이 다 패여나가고 옹노는 풀려진채로였다. 꼽새령감은 그 주변을 살피다가 두사람의 발자국이 아래로 뻗었고 잡관목들이 소 한마리폭으로 깨끗이 눕혀져있는것을 보았다. 그는 옹노에 붙어있던 메돼지털을 떼내가지고 그 자취를 따랐다. 쓰러진 나무가지들에도 메돼지털이 듬성듬성 붙어있었다. 그 흔적과 발자국은 장주사네 집으로 곧추 들어갔다. 륙십평생을 살면서 남의 옹노에 걸린 짐승을 제것으로 만드는 법이란 없는 이곳 인심에 습관된 꼽새령감은 쪽발구를 끌고 다시 와 장주사를 찾았다. 《메돼지를 끌고와주어서 감사하온데 그만 이젠 내가 가져가겠습니다.》 하고 꼽새령감이 말하자 장주사는 이 무슨 괴변날 소린가고 펄펄 뛰였다. 그 호통소리에 소먹이를 끓이던 한규가 나왔다.
《한규, 이 사람, 그래 우리 옹노에 걸린 메돼지를 끌어오지 않았나? 바루 좀 말해보게.》
꼽새령감은 눈에 눈물이 그렁해 마지막으로 한규에게 애원하듯 물었다. 한규는 눈덮인 산발을 쏘다니느라 바지자락이 온통 눈투성이인데다가 눈물, 코물이 수염에 매달려 떨고있는 꼽새령감을 보다가 흔연히 대꾸했다.
《아바이네 옹노에서 가져왔수꾸마. 돌려드리겠 지요.》
그 말에 장주사는 낯이 익은 가재가 되여 볼편을 푸들푸들 떨었다.
《주사님, 그럼 이젠 그만 롱담을 하고 돌려주시우다.》
꼽새령감은 너무 반가운김에 덥석 무릎까지 꿇고 억지웃음을 지어보이며 장주사에게 간청했다. 장주사는 썩은 콩 씹은 상으로 꼽새령감을 아니꼽게 노려보다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령감의 옹노건 아니건 다 상관없어. 여기 산판은 내 관할이야. 허가없이 옹노를 놓은것도 괘씸 한데 잡은 즘생을 끝내 가지러 드는 소위가 괘씸 해. 그러니 두말말고 돌아가라구. 그리고 마을에도 알리게. 이제부터 내 허가없인 메토끼 한마리 못 잡는다고. 되지 못한것들이 남의 산판에서 감자알이라도 심어먹는걸 대수로 보지 않고 짐승까지… 썩 물러가.》
꼽새령감은 화들화들 떠는 무릎을 겨우 펴 일어 났다. 목구멍에서는 가래만 끓을뿐 아무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때 한규가 픽 돌아서 씨엉씨엉 걸어 갔다. 삐거덕- 하고 허청간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100키로는 실히 될 메돼지를 꿍쳐메고 돌아나왔다.
《아바이, 갑시다.》
그는 한마디 하고는 장주사쪽은 보지도 않고 걸어 나갔다. 장주사의 벽력 같은 고함도, 개화장으로 들이지르는 매채도 그의 걸음을 멈춰세우지 못했다. 기가 뒤집힌 장주사는 쌍대배기렵총을 벗겨가지고 나와 대문턱을 넘어서는 한규를 쏘았다. 다행히 재워진것은 산탄이였다. 한규는 불로 지지는듯 한 아픔이겠건만 비칠했을뿐 넘어지지는 않았다. 메돼지를 뿌리쳐내리고 돌아섰다. 몇초동안 꼼짝 않고 장주사를 노려보던 한규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 기가 질린 장주사는 총을 든채 뒤걸음치다가 대청마루에 걸려 넘어졌다. 한규는 뜨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다가갔다.…
한규의 잔등은 국수분틀처럼 구멍이 송송했다. 연알들을 파내고 그 자리에 솜을 태워 붙였다. 나 도 울고 어머니도 울었으나 한규만은 꿈쩍하지 않았다.
《아프지?》
아버지가 물으면 《아니, 뜨끔도 안하우다.》 하며 흰소리를 쳤다. 잔등을 다 지지고 느릅나무껍질을 붙인후 어머니의 단벌 머리수건으로 감아맸을 때 그는 찬물을 찾았다. 그때 나는 그의 입술에 이발자리가 깊이 패이고 산탄알에 왼손새끼손가락이 무질러진것도 알아보았다.
한규는 이날 밤으로 우리 집을, 우리 동네를 떠났다. 장주사가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르는 형편에서 그의 걸음을 막을수 없었다. 그는 우리 집에 모인 동리어른들과 나의 부모님께 무릎절을 하고는 노전바닥에 이마를 대인채 한참이나 서럽게 울었다. 그러나 동구밖을 벗어날 때는 헌헌한 장부의 태도였다. 나와 서당집 춘영이가 그를 바래주었다.
희푸른 쪼각달빛에 거밋거밋한 산그림자가 길게 누운 발구길로 한창 내려가던 그는 마을이 어슴푸레 멀어지는 달구지길에 들어서자 불현듯 씩씩한 태도로 말을 하였다.
《내 노래 부르라니?》
그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목갈린 소리로 청을 뽑았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월궁속 선녀각시
님 찾아 나는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