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오리 흰머리카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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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조회 33회 작성일26-08-11 13:41본문
림이 죽었다는 소식에 나는 긴 한숨을 내쉬였다.
눈에서는 어느덧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렷다.
나보다 반시간 먼저 태여난 쌍둥이오빠를 나는 2여년동안
줄곧 림이라고 불러왔다.
림은 신축고층건물의 24층비계에서 떨어져죽었다.
올해 22살인 그는 벌써 6년째 줄곧 건축공사장에서 비계를 세우는 일을 해왔다.
그동안 3만여원의 돈을 벌었지만 거의다 나의 공부 뒤바라지에 썻다.
림이 있엇기에 나는 대학까지 나올수 있었다.
나는 림이 스스로 24층의 비계에서 투신했다는것을 잘 알고있고 또 이런날이 오게 될줄을
미리 예감하고있었다.이전에 우리는 내 손에 열아홉오리 흰머리카락이 모이게 되면
두사람중 한사람은 꼭 죽어야 한다고 약속했었다.
이틀전 나는 림한테 내 손에 이미 열여덟오리 흰머리카락이 모여졌다고 전화를 걸었다.
만나서 누가 자살하든지 결딴내야 했다.
나는 림이 생존의 기회를 나한테 줄것이라는걸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갈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나는 림이 생존의 기회를 나한테 줄것이라는걸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갈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만약 정말 사람이 죽어서도 령혼이 살아남는다면 오래전에 돌아가신 부모님들은 꼭23년전 그날의
밤자리를 후회할것이다.그때 부모님들이 만약 이런 죄악을 미리 예측할수 있었더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와 림을 목이라도 조여죽였을것이다.
우리가 초중 3학년에 다니던 그해 겨울,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B형간염에 걸려 3개월을 사이두고 총망히
세상을 떠났다.그해 우리 나이는 겨우 16세였다.
림은 나더러 학교를 그만두지 못하게 했다.부모님들의 장례를 치르고나서 세대주가 된 림은 낯선 외지로
무작정 돈벌러 떠났다.그때로부터 나의 옆자리는 항상 비여있었다.우리는 소학교때부터 줄곧 한 책상에
앉았는데 그 원인은 간단했다.첫째는 우리가 쌍둥이였기때문이고 둘째는 우리가 B형간염환자의 자식이였기때문이다.
림이 돈벌러 떠난후 반년동안 나는 줄곧 일기장에 림의 이름만 적고 또 적었다.
나는 림이 산설고 물이 선 타향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미처 몰랐지만 그는 끝까지 나의 공부뒤바라지를 해주었다.
우리는 둘 다 자존심이 엄청 강했다.어릴적부터 겪어왔던 고생은 우리한테 다른 사람들의 동정을 바라지않는 강한
성격을 굳혀주었다.우리는 한번도 학교의 생활보조에 손을 내밀지 않았다.그토록 어려운 나날을 우리는 용케도 잘 견뎌냈다.
나는 매달 녀자들에게만 오는 <그날>이 제일 두려웠다.나에게는 생리대를 살 돈조차 없었던것이다.
<그날>이 올즈음이면 나는 행여나 며칠 더 미뤄올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요행을 바라군했다.
허나 그것은 어리석은 기대였다.어느날 수업시간,한창 강의에 열중하는데 다리를 타고 붉은것이 흘러내렸다.
많이 당황했지만 나는 속옷속에 신문지 반장을 구겨넣는 림시조치를 취할수밖에 없었다.
후에 림이 어떻게 그 일을 알았는지 아무말없이 한꺼번에 생리대 몇십개를 사다주었다.
아마 그때부터 림이가 인젠 <어른>이 되였다는것을 안것같다.
부모님들이 세상뜬지 3년이 되던 해에 나는 자그마한 해변도시에 자리잡은 모대학에 붙게되였다.
어느날 학교에서 포치한 사회고찰을 나갔던 나는 건축공사장에서 농민공들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일하는가를 보게되였다.
그제서야 나는 림이 나의 공부뒤바라지를 위해 얼마나 고생이 막심했는지를 뼈속깊이 느낄수가 있었다.
대학으로 가기 며칠전의 어느날밤,갑자기 몇백리밖의 외지에서 집으로 돌아온 림이 대학에 가거든 집에서처럼
옷을 초라하게 입으면 안된다면서 옷 한보따리를 내놓았다.나한테 그 옷들을 사주려고 림이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한테서
돈을 꾸엇다는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옷들은 모두 도시에서 한창 류행되는것들이였다.
림은 어찌나 세심한지 브래지어며 팬티며 스타킹까지 일일이 챙겼다.땀냄새가 물씬 풍기는 림의 어깨에 기대여
이름모를 행복감에 젖어든 나는 장차 시집을 가도 꼭 이런 남자를 찾으리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림은 그런 감정표달방식이 생소한지 얼굴이 빨개지더니 나를 후다닥 밀쳐내였다.
나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림을 쳐다보았다.비록 나보다 고작 반시간 먼저 세상에 태여났으면서도
비록 나는 여태 한번도 그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는데도 그는 나를 항상 보살펴줘야할 동생으로 생각하고있었다.
림의 얼굴엔 열아홉 나이답지 않게 어느덧 제법 성숙이 자리잡고있었다.
나는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 난생처음 오빠라고 부르며 아예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부모님들이 세상뜬후 림은 외지에서 막일을 하고 나는 대학공부를 하다보니 자주 만날수 없엇지만 해마다
음력설만 되면 어김없이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말이 집이지 실은 부모님이 남겨준 세칸짜리 찌그러진 오막살이였다.집에 돌아가면 우리는 먼저 부모님들의
산소를 찾아 제를 올렸다.고향사람들은 년말에 자식들이 돌아간 부모님들의 산소를 찾지않으면 <망할놈의 가문>이라고
욕을 했다.우리는 돌아가신 부모님들을 욕보이게 하고싶지 않아 년말만되면 꼬박꼬박 제를 올렸다.
대학에 간후의 첫 겨울방학에도 나와 림은 집에 갔었다.대학에 붙고 또 학교에 조학대부금을 신청했는지라
우리의 기분은 무척 즐거웠다.
그날밤,한밤중에 들려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결에서 깨여난 나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놀랍게도 림이 수음을 하고있었던것이다.나는 림이 그렇게 오래동안 욕구를 참아왔다는것을 그때서야 알게되였다.
정상적인 남자애에게 흔히 있을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웬지 그러는 림이 안쓰러워보였다.
우리는 쌍둥이기때문에 어릴적부터 별다른 거리감없이 잘때에도 침대와 침대사이에 그냥 얄팍한 카텐만 쳤을뿐이였다.
어둠속에서 나는 간헐적으로 헐떡거리는 림의 거치른 숨소리를 들었다.아마 그때 림은 머리속으로 한창어느 미인의
육감적인 몸체를 상상하고있었을것이다.황홀경에 빠진 림은 아예나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있는것 같았다.
나는 정상으로 톺아오르려는 림의 숨가쁜 헐떡거림과 종점에 다달았을때의 만족스러운 신음소리를 지척에서
똑똑히 들을수 있었다.순간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림이 여태 따뜻하게 품을 안해도 없이 한밤중에
수음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된것은 모두 내탓이라는 가해의식에 시달린것도 그때부터였다.
눈에서는 어느덧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렷다.
나보다 반시간 먼저 태여난 쌍둥이오빠를 나는 2여년동안
줄곧 림이라고 불러왔다.
림은 신축고층건물의 24층비계에서 떨어져죽었다.
올해 22살인 그는 벌써 6년째 줄곧 건축공사장에서 비계를 세우는 일을 해왔다.
그동안 3만여원의 돈을 벌었지만 거의다 나의 공부 뒤바라지에 썻다.
림이 있엇기에 나는 대학까지 나올수 있었다.
나는 림이 스스로 24층의 비계에서 투신했다는것을 잘 알고있고 또 이런날이 오게 될줄을
미리 예감하고있었다.이전에 우리는 내 손에 열아홉오리 흰머리카락이 모이게 되면
두사람중 한사람은 꼭 죽어야 한다고 약속했었다.
이틀전 나는 림한테 내 손에 이미 열여덟오리 흰머리카락이 모여졌다고 전화를 걸었다.
만나서 누가 자살하든지 결딴내야 했다.
나는 림이 생존의 기회를 나한테 줄것이라는걸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갈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나는 림이 생존의 기회를 나한테 줄것이라는걸 알고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갈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만약 정말 사람이 죽어서도 령혼이 살아남는다면 오래전에 돌아가신 부모님들은 꼭23년전 그날의
밤자리를 후회할것이다.그때 부모님들이 만약 이런 죄악을 미리 예측할수 있었더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와 림을 목이라도 조여죽였을것이다.
우리가 초중 3학년에 다니던 그해 겨울,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B형간염에 걸려 3개월을 사이두고 총망히
세상을 떠났다.그해 우리 나이는 겨우 16세였다.
림은 나더러 학교를 그만두지 못하게 했다.부모님들의 장례를 치르고나서 세대주가 된 림은 낯선 외지로
무작정 돈벌러 떠났다.그때로부터 나의 옆자리는 항상 비여있었다.우리는 소학교때부터 줄곧 한 책상에
앉았는데 그 원인은 간단했다.첫째는 우리가 쌍둥이였기때문이고 둘째는 우리가 B형간염환자의 자식이였기때문이다.
림이 돈벌러 떠난후 반년동안 나는 줄곧 일기장에 림의 이름만 적고 또 적었다.
나는 림이 산설고 물이 선 타향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미처 몰랐지만 그는 끝까지 나의 공부뒤바라지를 해주었다.
우리는 둘 다 자존심이 엄청 강했다.어릴적부터 겪어왔던 고생은 우리한테 다른 사람들의 동정을 바라지않는 강한
성격을 굳혀주었다.우리는 한번도 학교의 생활보조에 손을 내밀지 않았다.그토록 어려운 나날을 우리는 용케도 잘 견뎌냈다.
나는 매달 녀자들에게만 오는 <그날>이 제일 두려웠다.나에게는 생리대를 살 돈조차 없었던것이다.
<그날>이 올즈음이면 나는 행여나 며칠 더 미뤄올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요행을 바라군했다.
허나 그것은 어리석은 기대였다.어느날 수업시간,한창 강의에 열중하는데 다리를 타고 붉은것이 흘러내렸다.
많이 당황했지만 나는 속옷속에 신문지 반장을 구겨넣는 림시조치를 취할수밖에 없었다.
후에 림이 어떻게 그 일을 알았는지 아무말없이 한꺼번에 생리대 몇십개를 사다주었다.
아마 그때부터 림이가 인젠 <어른>이 되였다는것을 안것같다.
부모님들이 세상뜬지 3년이 되던 해에 나는 자그마한 해변도시에 자리잡은 모대학에 붙게되였다.
어느날 학교에서 포치한 사회고찰을 나갔던 나는 건축공사장에서 농민공들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일하는가를 보게되였다.
그제서야 나는 림이 나의 공부뒤바라지를 위해 얼마나 고생이 막심했는지를 뼈속깊이 느낄수가 있었다.
대학으로 가기 며칠전의 어느날밤,갑자기 몇백리밖의 외지에서 집으로 돌아온 림이 대학에 가거든 집에서처럼
옷을 초라하게 입으면 안된다면서 옷 한보따리를 내놓았다.나한테 그 옷들을 사주려고 림이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한테서
돈을 꾸엇다는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옷들은 모두 도시에서 한창 류행되는것들이였다.
림은 어찌나 세심한지 브래지어며 팬티며 스타킹까지 일일이 챙겼다.땀냄새가 물씬 풍기는 림의 어깨에 기대여
이름모를 행복감에 젖어든 나는 장차 시집을 가도 꼭 이런 남자를 찾으리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림은 그런 감정표달방식이 생소한지 얼굴이 빨개지더니 나를 후다닥 밀쳐내였다.
나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림을 쳐다보았다.비록 나보다 고작 반시간 먼저 세상에 태여났으면서도
비록 나는 여태 한번도 그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는데도 그는 나를 항상 보살펴줘야할 동생으로 생각하고있었다.
림의 얼굴엔 열아홉 나이답지 않게 어느덧 제법 성숙이 자리잡고있었다.
나는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 난생처음 오빠라고 부르며 아예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부모님들이 세상뜬후 림은 외지에서 막일을 하고 나는 대학공부를 하다보니 자주 만날수 없엇지만 해마다
음력설만 되면 어김없이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말이 집이지 실은 부모님이 남겨준 세칸짜리 찌그러진 오막살이였다.집에 돌아가면 우리는 먼저 부모님들의
산소를 찾아 제를 올렸다.고향사람들은 년말에 자식들이 돌아간 부모님들의 산소를 찾지않으면 <망할놈의 가문>이라고
욕을 했다.우리는 돌아가신 부모님들을 욕보이게 하고싶지 않아 년말만되면 꼬박꼬박 제를 올렸다.
대학에 간후의 첫 겨울방학에도 나와 림은 집에 갔었다.대학에 붙고 또 학교에 조학대부금을 신청했는지라
우리의 기분은 무척 즐거웠다.
그날밤,한밤중에 들려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결에서 깨여난 나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놀랍게도 림이 수음을 하고있었던것이다.나는 림이 그렇게 오래동안 욕구를 참아왔다는것을 그때서야 알게되였다.
정상적인 남자애에게 흔히 있을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웬지 그러는 림이 안쓰러워보였다.
우리는 쌍둥이기때문에 어릴적부터 별다른 거리감없이 잘때에도 침대와 침대사이에 그냥 얄팍한 카텐만 쳤을뿐이였다.
어둠속에서 나는 간헐적으로 헐떡거리는 림의 거치른 숨소리를 들었다.아마 그때 림은 머리속으로 한창어느 미인의
육감적인 몸체를 상상하고있었을것이다.황홀경에 빠진 림은 아예나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있는것 같았다.
나는 정상으로 톺아오르려는 림의 숨가쁜 헐떡거림과 종점에 다달았을때의 만족스러운 신음소리를 지척에서
똑똑히 들을수 있었다.순간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림이 여태 따뜻하게 품을 안해도 없이 한밤중에
수음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된것은 모두 내탓이라는 가해의식에 시달린것도 그때부터였다.

